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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가마우지 경제 탈피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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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한국 경제는 양쯔강의 가마우지 같다. 목줄(일본 부품·소재 산업)에 묶여 물고기(완제품)를 잡아도 곧바로 주인(일본)에게 바치는 구조다.’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가 1989년 『한국의 붕괴』에서 쓴 내용이다.

중국에서는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잡아도 못 삼키게 한 뒤 어부가 가로챘다. 이에 빗댄 ‘가마우지 경제’는 한국 수출구조의 취약점을 일컫는다. 이 말이 30년 만에 부활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배제하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가마우지 경제 탈피를 강조하면서다.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편제한 1998년 이후 대 일본 경상수지는 21년 연속 적자다. 작년에는 242억 달러 적자였다. 작년 대 중국 경상수지는 491억 달러 흑자였다. 가마우지 경제라기보다 동북아 분업 구조 속 비교 우위에 따른 선택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첨단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기술 개발이 비효율적이라 일본에서의 수입을 선택한 셈이다.

대일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정부의 선언과 의지는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냉정한 전략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 대응에 휩쓸릴 때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2004년 한·일 FTA를 검토하는 경제보좌관에게 보낸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한일 관계의 역사상 한국 측은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내켜서 덜컥 일을 저질러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남긴 예가 많았다. 손자의 말대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일 텐데, 우리는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니 매전필패(每戰必敗)일 수밖에 없었다.’(『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새로운 제국-중국』을 쓴 로스 테릴은 “목표 수립과 그 목표를 성취할 힘을 가진 건 별개”라고 했다. 능력이 부족한 의지는 언제나 위험하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