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좌천성 인사, ‘현재 권력’엔 손대지 말라는 메시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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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느 조직이든 인사(人事)를 보면 그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다. 인사에서 누가 중용되고 누가 좌천되는지를 보면 앞으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을 기소했던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이 어제 사의를 밝혔다. 그는 “공직관(公職觀)이 흔들리고 있는데 검사 생활을 더 이어가는 것은 국민과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했다. 전날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주 부장검사가 지방 지청장으로 발령 난데 대해 ‘사실상 좌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그 직속 상관인 권순철 차장검사는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뒤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되자 “인사는 메시지”라는 글과 함께 사의를 나타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 김범기 2차장검사 역시 검사장 승진 명단에서 빠졌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성 인사 대상이 된 반면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부 검사들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법행정권 남용 등 이른바 ‘적폐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서울중앙지검 1, 2, 3차장으로 배치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편 가르기 인사다” “인사권으로 검찰을 길들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인사 결과가 일선에서 일하는 검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너무나 명확하다. 과거의 권력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현재의 권력엔 대충 눈감고 넘어가라는 뜻으로 읽히지 않겠는가. 이런 식의 인사는 “검찰 개혁을 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함을 강조했다.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게 된다.” 이번 인사를 보면 대통령의 ‘검찰 중립’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그 의지를 국민이 어떻게 체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총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후 박근혜 정부 내내 고검 검사로 전전해야 했다. 총장 자신이 그릇된 검찰 인사의 폐해를 절감했던 장본인이다. 그럴수록 자신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