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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에서 조국까지…교수들의 ‘앙가주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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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금 서울대로 복직한 상태다. 하루 전인 7월 31일 청와대가 조 전 수석의 면직을 알리는 팩스를 서울대로 보내면서다.

교육공무원법은 44조 3항에 따라 교수의 정무직 공무원 진출 시 해당 교수의 휴직을 보장하고 있고, 휴직 기간은 그 공무원의 재임 기간으로 한다. 따라서 사실상 서울대에 자동복직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조 전 수석은 곧 휴직계를 내야 할 상황이다. 법무부 장관 입각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소회를 밝힌 뒤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소회를 밝힌 뒤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①휴직 후 공직으로=교수들이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나 해외 주재 대사 등으로 발탁돼 정무직 공무원으로 변신한 사례는 많다. 그때마다 대부분 휴직했고, 일부는 공직 수행 후 복직했다.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으로 돌아간 김현철 교수가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한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같은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호주 대사를 지낸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수행한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도 같다.

대학 휴직 후 ‘3년 임기직’을 수행한 이도 여럿이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권오승 전 권익위원장, 한인섭·이재상·김일수 전 형사정책연구원장,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등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해외 사례도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1981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그 사이인 1989년에 휴직한 뒤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장회의(NSC) 소련·동유럽 국장과 대통령 국가안보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이후 학교로 복직해 1994년 부총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뉴스1]

②선출직은 2013년부터 사퇴=교수가 국회의원 등의 선출직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경우는 대부분 교수직을 내려놨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박근혜 정부 안전행정부 장관에 발탁됐다. 입각 시 휴직계를 냈다가 장관직을 마친 뒤 복직한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 도전하면서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같은 당의 유민봉 의원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시절 박근혜 정부 청와대 초대 국정기획수석으로 임명되면서 휴직했다가 2015년 복직했다. 이후 20대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로 오르면서는 교수직을 사임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에 오르면서 서울대 교수직을 내려놨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거꾸로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기도 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는데, 이때는 교수직을 휴직하고 의정활동을 했다. 앞선 이들과 차이가 있는 건 2013년 12월 30일 개정된 교육공무원법과 2013년 3월 개정된 국회법 때문이다. 개정 전의 교육공무원법 44조 2항은 교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자동으로 교수직이 휴직 되도록 규정돼 있었다. 이때 해당 조항을 통째로 삭제하면서 ‘교수-국회의원’ 겸직 금지 원칙을 세웠다. 국회법도 교수가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경우 임기개시일 전까지 교수직을 사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③공직 임명 후 정년 맞아 퇴임도=교수 시절 공직에 임명됐다가 정년을 맞아 자연스레 퇴임한 경우도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017년 7월 임명된 뒤 한 달 만인 8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정년퇴임했다. 다만, 지금도 명예교수로 학교에 적을 두고 있기는 하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도 지난해 2월 정년퇴임했다. 공직에 임명된 뒤 알아서 사직한 경우도 있다. 소수지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2009년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 교편을 내려놨다. 이준식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2016년 지명 직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조 전 수석의 경우 서울대생이 교내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과거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법적, 절차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민정수석에 연이어 법무부 장관 입각이 기정사실로 되면서 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측면이 있다. 과거 그가 비록 선출직 공무원을 예로 들긴 했지만, 교수의 공직 진출로 초래되는 학사행정 차질이나 새로운 교수 충원 불가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터이기도 하다.

조 전 수석은 1일 페이스북에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는 글을 올렸다. 앙가주망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란 뜻이다. 조 전 수석은 “민정수석 업무는 전공(형사법)의 연장이기도 했다”며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조정, 법무부 혁신, 공정한 형사사법 체제 구성 등은 나의 평생 연구 작업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수업 당 학생 수가 많아졌다는 학생들의 불만도 이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도 나의 선택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훨씬 풍부해진 실무경험을 갖추고 연구와 강의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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