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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날강두’ 40만원 낸 팬들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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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한 친선경기 직후 무뚝뚝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는 호날두. 이날 호날두는 6만3000여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단 1분도 뛰지 않은 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떠났다. [뉴시스]

내한 친선경기 직후 무뚝뚝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는 호날두. 이날 호날두는 6만3000여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단 1분도 뛰지 않은 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떠났다. [뉴시스]

송지훈 스포츠팀 기자

송지훈 스포츠팀 기자

축구 스타 ‘호날두’가 ‘날강두(날강도+호날두)’로 둔갑하기까지는 한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많게는 40만원을 들여 입장권을 구한 뒤 무더위와 장맛비 속에도 경기장을 찾았던 6만3000여 축구 팬은 허탈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문 유벤투스와 K리그 선발팀 ‘팀 K리그’의 친선 경기는 당초 기대와 달리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고약한 수식어를 달고 막을 내렸다. 당초 ‘무조건 45분 이상 출전한다’던 유벤투스 간판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가 끝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이날 오후 2시45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경기 전 예정됐던 팬 미팅에는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그리고 그라운드엔 단 1분도 나서지 않고 한국을 떠났다. 그가 한국에 머문 시간은 고작 10시간 15분이었다. 호날두의 플레이를 기다리던 한국 팬들의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로 변했다. 전반까지만 해도 호날두가 전광판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뜨거운 환호를 보냈지만, 후반엔 관중석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컨디션이 나쁘다며 서울에서는 단 1분도 뛰지 않은 호날두가 이탈리아 복귀 직후 운동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호날두 SNS 캡처]

컨디션이 나쁘다며 서울에서는 단 1분도 뛰지 않은 호날두가 이탈리아 복귀 직후 운동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호날두 SNS 캡처]

유벤투스 구단 관계자들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입국이 예정보다 3시간 가까이 늦어져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이 오후 8시인데 8시 15분에야 경기장에 도착한 건 게으름이 아니라 무례한 행동이었다. 6만여 명의 관중은 물론 생중계를 기다리던 축구 팬들 모두 영문도 알지 못한 채 5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전세기를 타고 이탈리아 토리노(유벤투스 연고지)로 돌아간 뒤에도 호날두와 유벤투스 관계자들은 묵묵부답이다. 호날두의 결장과 선수단 지각 사태에 대해 사과는 커녕 납득할 만한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경기를 위해 주최 측이 유벤투스에 지급한 초청료는 300만 달러(약 36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유벤투스 구단 관계자는 출국 전 더 페스타 측에 “계약 위반 사항이 있다면 위약금을 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팬의 가슴에 생긴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기가 끝난 뒤 일부 팬은 호날두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찢었다. 유벤투스 관련 기사의 댓글창에는 “이젠 ‘우리 형’ 호날두가 아니라 ‘날강두’라 부르겠다”는 선언이 넘쳐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성의와 오만으로 일관한 호날두와 유벤투스는 이번 방한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훨씬 많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송지훈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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