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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불사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8월 어느 날 한미연합사의 두 장교는 비무장지대 남쪽에서 땅굴 하나를 발견한다. 지표에서 약 10m의 수직구멍을 뚫고 내려가 보니 놀랍게도 그 땅굴은 최소한 폭이 13m나 되는 3차선의 지하 고속도로였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땅굴 속에는 30여대의 탱크를 주축으로 한 적의 기갑대대 장비들이 남쪽을 향한 채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그 땅굴이 발견된 지 약 4개월 뒤인 12월25일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일어난다. 물론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는 적의 기습공격으로.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판되어 화제가 되고있는 래리 본드의 테크노스릴러 소설『붉은 불사조』는 제2차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가상시나리오다. 하지만 6·25를 체험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잊어버린 전쟁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이 소설 속의 한국전쟁은 6·25 당시와 유사한 점이적지 않다. 북쪽의 오랜 전쟁준비로 인한 압도적인 병력과 소련의 지원도 그렇지만, 남쪽 반정부세력이 봉기, 가담할 것이라는 오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전쟁도「조국해방전쟁」이며「북침」에 과감히 맞서 싸운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6·25 때의 상황과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대표적인 것이 한국내의 사회혼란이다. 연립정부의 무력함에 불만을 품은 과격한 학생데모가 일어나자 유혈진압이 이뤄진다. 결국 일부 군부가 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패한다. 거기에다 미국의회는 무역보복법안과 함께 주한미군의 철수를 결의한다. 북한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제2차 한국전쟁은 UN의 참전결의, 중국의 휴전제의 소련의 지원철회에 잇따라 북한내각의 김정일 숙청 등으로 30일만에 끝나고 만다.
물론 한국군의 충천하는 사기와 그들이 믿고 있던 남한의 반정부세력이 오히려 침략군에 맞서 용감히 싸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가상소설이기는 하지만『붉은 불사조』는 전혀 허황된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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