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예산 꼭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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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정기조의 유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정부가 내년 예산만은 대폭 늘릴 계획이라 한다.
아직 정부예산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보도에 따르면 올해보다 15∼20%정도가 늘어난 22조∼23조원 범위 안에서 내년 예산안이 짜여지리란 얘기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지나친 팽창예산이 아니냐는 걱정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도 같은 생각이다.
물론 예산규모를 15∼20%정도 늘린다고 해서 이것을 팽창예산이라고 보아야 하느냐 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고 정부가 예산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사정도 모르지 않는다.
복지확대나 지역간·계층간 불균형 시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은 시점인 만큼 정부로서는 이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입장이고 그 가장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방법이 복지예산이나 지역개발 예산을 늘리는 방법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최근에는 교육·환경개선, 민생치안 등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예산을 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년도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에 대해우려를 표하는 것은 눈앞의 절실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팽창예산이 가져올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재정지출의 증가에 따른 인플레 우려와 인플레 심리의 자극이다.
물론 예산규모를 늘린다해도 그것이 재정적자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는 통화 중립적이어서 따로 인플레를 유발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동안의 예산정책이나 재정운용은 세출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세입보다 세출을 줄여 매년 2조∼3조원의 세계잉여금을 냈고, 그만큼 재정은 통화환수요인으로 작용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내년 예산에서는 세계잉여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짜고 집행할 것이라 하니 재정이 상대적으로 그만큼 통화증발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통화관리를 안정적으로 해 나가려 할 경우 정부부문의 지출확대는 필연적으로 민간여신의 축소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바로 민간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기업은 정부의 금융긴축으로 투자·생산활동이 적지 않게 제약을 받고 있고 높은 금리부담으로 채산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면 자칫 민간경제가 재도약을 하기 위해 필요한 탄력을 잃고 말 우려도 없지 않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정기조를 내세워 임금 등의 한자리수 정책을 강력히 들고 나온 정부가 정부예산을 20%가까이 늘릴 경우 한자리수 정책의 당위성을 무슨 말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며 국민들의 정부의지에 대한 불신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또 복지수요가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한번 늘어난 복지예산은 다시는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재정의 탄력적 운용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내년은 공교롭게도 광역 지방자치단체 의회선거가 있고 내후년에는 자치단체장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 같은 시기에 정부가 안정을 외면하면서까지 팽창예산을 편성하려는 것은 자칫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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