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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접속도 말고 일하지도 말라'···MBC 아나운서 7인의 두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내 괴롭힘 진성서를 내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 [연합뉴스]

직장내 괴롭힘 진성서를 내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 [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인 16일, 2016·2017년에 입사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노동청에 이 법과 관련한 진정서를 냈다.

MBC 계약직 아나운서 7명은 이날 오전 서울고용노동청을 방문해 MBC를 피진정인으로 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MBC가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했다는 내용이다.
진정서에 따르면 아나운서들은 지난해 5월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된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올해 5월 복직했다. 하지만 이후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아나운서 업무를 하지 못한 채 회사 업무로부터 배제당하고 있다는 게 아나운서들의 주장이다.

일 안 주고 인트라넷 접근 못 해  

이들은 MBC 상암동 사옥으로 출근하지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니라 12층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머물고 있다. 아나운서 관련 업무를 받지 못하고, 사내 인터넷 전산망에 접속할 권한도 없다.
진정을 넣은 MBC 아나운서들은 앞선 사례가 신설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인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고▶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하며▶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을 뿐 아니라▶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한 행위 등에 속한다고 적었다.

2016,2017년도에 입사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출근하는 공간. 이들은 진정서에 "첨부한 사진은 12층 빈공간에 '아나운서국' 팻말만 달아놓고 진정인들을 분리해놓은 모습입니다. 진짜 아나운서국은 9층에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사진 이선영 아나운서]

2016,2017년도에 입사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출근하는 공간. 이들은 진정서에 "첨부한 사진은 12층 빈공간에 '아나운서국' 팻말만 달아놓고 진정인들을 분리해놓은 모습입니다. 진짜 아나운서국은 9층에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사진 이선영 아나운서]

다만 진정서에 함께 넣은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이나 '집단 따돌림'은 입증이 쉽지 않다는 게 진정대리인 류하경 변호사의 설명이다. 류 변호사는 "MBC 내에서 이들을 ‘적폐세력’이라 부르는 등 직장 내 따돌림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지만, 입증하기는 까다롭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출근해서 온종일 일도 없이 앉아있어야 한다. 이들이 겪고 있는 일을 일반인이 하루만 겪어도 우울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장 갑질을 사장에게 신고하라는 법"

그러나 MBC 아나운서들의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해도, 노동청에서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무법인 덕수의 황준협 변호사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측이 조치를 제대로 못 한 경우만 처벌하기 때문에 이 사건도 직접적인 처벌은 어렵고 행정지도 수준에 그칠 거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김수영 변호사는 "사장이 괴롭혀도 사장을 찾아가 고충 처리 신고를 하란 게 법 내용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MBC 아나운서들이 노동청을 찾아간 것 같다"며 "큰 사업장이 아니고서는 보통 괴롭힘의 주체가 사장인 경우가 많은데, 허점이 많은 법"이라고 지적했다.

1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관련 진정을 넣기 위해 중구 서울고용청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1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관련 진정을 넣기 위해 중구 서울고용청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실효성 살리려면 노동청 역할이 관건  

이런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노동청의 적극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류하경 변호사는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제 수단을 가진 노동청이 직장 내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사업장에서 현실적으로 법이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청이 의지만 있으면 MBC에 근로감독관을 파견시켜 내일 당장 시정하란 권고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 법은 노동청에 내려진 숙제"라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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