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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달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 영화계에 모처럼 경사가 났다. 지난번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강수연양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다시 그랑프리를 탔다. 명성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는 우리 영화 70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신인 배용균 감독의『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는 국내에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작품이다. 생소하기는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조형미술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학구파다. 86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프러덕션을 차려 이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따라서 영화『달마…』는 제작, 각본, 촬영, 감독을 혼자 도맡아 완성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6월말 영화진흥공사가 실시한 금년도 상반기「좋은 영화」선정 심사 때다. 당시 3시간 짜리 이 영화를 본 영화계 인사들은 충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영화는 일정한 스토리가 없다. 다만 깊은 산 속의 퇴락한 암자에서 수행정진에 전념하고 있는 노 선사와 그에게 깨우침을 받으러 입산한 젊은 비구승, 그리고 동자스님 세 사람의 일상생활이 얘기의 전부다.
그러나 깊은 계곡 바위 위에서 산새와 나뭇잎을 벗삼아 노는 동자스님의 천진무구한 동작 하나하나,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준령처럼 우뚝한 도의 경지를 엿보이게 하는 노스님의 선문답, 눈먼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두고 입산한 젊은 비구승의 속세의 인연과 구도의 갈림길에서 번민하는 모습 등이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조용한 감동을 준다.
그뿐 아니라 이 영화는 자연과 등장인물의 표정 하나 하나를 묘사하는데도 지금까지 우리 영화가 보여준「그림엽서」같은 평면적 화면이 아닌 전혀 새롭고 차원 높은 영상미학을 담고 있다. 특히 산 속의 들꽃들이 별빛 속에 흐드러지는 장면을 아무런 조명의 도움 없이 그대로 찍은 촬영기법은 그야말로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마침 미국영화 직배 상영관들이 화염병 등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던 날, 한국영화의 국제영화제 제패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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