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허창수 8000억 ‘정유·화학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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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신동빈 롯데 회장(左), 허창수 GS 회장(右)

신동빈 롯데 회장(左), 허창수 GS 회장(右)

재계 5위 롯데와 8위 GS가 8000억원을 투자해 합작사를 설립한다. 연결 고리는 화학 산업이다. 롯데케미칼과 GS에너지는 15일 서울 잠실 롯데 시그니엘에서 국내 합작사 설립 계약을 했다. 두 회사는 올해 하반기 합작사 설립을 마무리하고 여수산단에 8000억원을 투자해 화학 소재(비스페놀A·C4유분) 공장을 건설한다. 롯데케미칼이 51%, GS에너지가 49%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롯데·GS 비스페놀 공장 합작 #정유·화학업계 잇단 합종연횡 #사업 다변화로 전기차시대 대비 #전기차 충전, 택배·세탁사업도

롯데와 GS의 합작사 설립은 1년 전인 지난해 중순 무렵 시작됐다. 양사 실무자가 만나 합작사 설립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실무진 협의-경영진 결정-계약서 작성까지 1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옥중에 있을 때부터 실무선에서 논의를 진행하다가, 지난해 연말 출소한 이후 신 회장이 합작사 설립을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화학 산업을 고리로 한 재계의 합종연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롯데케미칼과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5월 2조7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신사업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계약을 했다. 양사의 합작법인인 현대케미칼에 추가 출자를 통해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부지(50만㎡)에 에틸렌 공장을 건설키로 합의했다. 신설될 공장에선 연간 75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예정이다. 에틸렌은 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기본 소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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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와 화학사 간 동맹 결성이 이어지는 이유는 시너지가 커서다. 롯데케미칼과 GS에너지의 합작사 설립의 경우 GS에너지는 자회사 GS칼텍스를 통해 합작사에 필요한 화학 제품 생산원료인 프로필렌, 벤젠 등을 공급해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기존 정유 사업에서 화학 산업으로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GS에너지 관계자는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원유 기반 화학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그동안 폴리카보네이트 생산 원료를 대부분을 외부에서 공급받았으나 합작사 설립을 통해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발 더 들어가면 매출은 높지만 수익성이 답보상태인 정유업계의 고민이 놓여 있다. 정제마진을 살펴보면 이런 고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시아 정유제품 가격 기준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6월 말 배럴당 2.8달러까지 하락했다. 통상 정제마진이 배럴당 4.5달러 이하면 정유사는 손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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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마진 하락이 올해 들어 이어지면서 정유사는 비정유사업을 늘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15일 전기차 충전사업 진출을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전기차 충전기 제작업체와 손잡고 서울·부산 등 10개 주유소와 소매점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GS칼텍스는 올해 7개 직영주유소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했다. 주유소의 ‘변신’을 꿈꾸는 정유사는 또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주유소를 거점으로 활용하는 택배 서비스(홈픽·Homepick)를 시작한 데 이어, 주유소를 활용한 물건 거래·보관·세탁 서비스(큐부·QBoo)를 도입했다.

정유업계의 신사업 진출은 결국 미래 에너지 전환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내연기관 대신 모터를 이용하는 전기차 판매 비중이 늘면서 에너지 소비 형태가 빠르게 변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운송부문 원유 수요는 2030년까지 매년 2.5%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석유 화학용 원유 수요는 매년 3.2%씩 증가할 전망”이라며 “정유사의 사업 다각화는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기헌·문희철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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