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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금감원이 못 한 일을 핀테크 기업이 해냈다…이게 바로 시장의 힘

중앙일보

입력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37개 혁신금융서비스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37개 혁신금융서비스 현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금융회사가 제안하는 실제 대출금리·한도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한눈에 비교해보고 대출신청까지 할 수 있다. 이달 중 5개 핀테크 기업이 선보일 ‘대출금리 플랫폼’이 그것이다. 금융당국이 혁신성을 인정해서 금융규제를 일시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 받은 덕에 탄생한 새로운 서비스다. 그런데 똑같은 서비스를 이미 2년 전 내놓으려고 시도했던 기관이 있었다. 바로 금융감독원이다.

금감원이 대출비교 플랫폼을 만들려 했었다는 사실은 9일 열린 ‘37개 혁신금융서비스 현장간담회’ 행사에서 처음 알게 됐다. 이준호 금감원 감독총괄국장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관계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서비스(대출비교 플랫폼)는 금감원이 금융소비자의 편의성 제고를 위해 해볼까 시도하다가 못한 쓰라림이 있습니다.”

마치 금융결제원의 ‘내계좌한눈에(어카운트인포)’처럼 공공서비스 형태로 대출비교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서비스가 됐을 것이다. 금감원이 만드는 서비스라면 대형 은행을 포함한 전 금융권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게다가 모집수수료가 아예 없는 공공서비스라면 대출금리 인하 효과도 꽤 크다. 대출금리 0.1%포인트 차이에도 민감한 고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용하는 국민 서비스로 단숨에 올라섰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금감원은 왜 못 했는지. 이준호 국장에게 물어보자 “너무 복잡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정확한 대출조건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지금 핀테크 기업들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정보(공인인증서)를 받아서 금융회사와 연결해 정확한 조건을 받더군요. 우리는 그 생각을 못 했죠.”

그 설명이 기자의 귀에는 더 나은 서비스가 생존을 좌우하는 민간 스타트업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2년 전이면 이미 고객 공인인증서를 받아서 자산관리를 해주는 핀테크 기업이 여럿 나와 있을 때다. 더 깊게 고민했다면 길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금감원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잘됐다. 금감원이 포기한 덕분에 핀테크 기업 무려 11곳이 대출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하겠다며 달려들었다. 이미 첫 타자로 핀다가 지난 4일 서비스를 시작했고 마이뱅크도 15일 오픈을 준비 중이다. 1100만 회원을 보유한 토스까지도 7월 말 이 시장에 뛰어든다.

물론 시장을 뒤흔드는 파괴력은 금감원이 직접하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아이디어로 고객 수요에 맞게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능력은 핀테크 기업이 더 앞설지 모르겠다. 덤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금감원이 그때 안 하길 잘했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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