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유족 "본인 돈으로 결혼한다던 멋진 딸과 사위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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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4일 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4일 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려하게 (결혼) 안 하고 직장생활 하며 번 돈으로 수준에 맞게 시작한다던 멋진 딸과 사위였는데…”

서울 잠원동 건물붕괴 사고(4일)로 딸을 잃은 아버지 이모씨는 5일 기자 앞에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씨의 딸(29)은 사고 시간 철거 중인 건물 주변을 차를 타고 지나다가 화를 입었다.

내년 2월 결혼을 앞둔 이씨는 예비신랑과 함께 사고를 당했다. 예비신랑 황모(31)씨는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잠원동 건물 붕괴 현장에서 119구조대원들이 매몰된 차량을 꺼내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잠원동 건물 붕괴 현장에서 119구조대원들이 매몰된 차량을 꺼내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로 딸을 잃은 이씨는 예비부부에 대해 “(아이들이) 연애결혼이고 자기(사위)가 고생할지언정 자기 여자(딸)를 예뻐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해 귀여워했다”고 기억했다. 예비부부는 결혼에 필요한 돈도 자기들이 모두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는 “신혼살림에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는데도 자기들 예산 범위내에서 하겠다고 했다"며 “여자 입장에서는 화려하고 멋있는 결혼식을 꿈꿨겠지만 두 아이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아비 입장에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숨진 딸은 이씨 집안 4남매 중 둘째였다. 생활력이 강해 저축도 잘 하고 가족에 대한 배려심도 컸다고 한다. 집에서 별명은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아’라고 부르면 아들이 아니라 그 애(둘째 딸)가대답을 했다”며 “자립심이 강해서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을 내고 장학금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직원이었던 직장에서 ‘더 큰 곳에서 놀고 싶다’며 그만둔 뒤 임시직으로 갔다. 그리고 1년 만에 그 회사 정직원이 됐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짜리 건물이 4일 오후 철거 작업 도중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방대원들이 건물에 깔린 인명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짜리 건물이 4일 오후 철거 작업 도중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방대원들이 건물에 깔린 인명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씨가 처음 사고 연락을 받은 건 4일 오후 5시 45분쯤이었다고 한다. 예비부부가 사고를 당한 차가 이씨 소유인 것을 확인한 경찰은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이씨는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그는 “우리 아이 일로 (장난) 전화하지 말아라. 전화 끊겠다”고 했다. 그런 뒤 “뉴스를 한 번 보시라”는 경찰의 설명에 사고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백주대낮에 날벼락을 맞는다는 게 그런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씨는 경찰에게 “차 안에 남자가 하나 있을 것이다. 예비사위니까 신원을 확인해주고 신경써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는 길에 그런 일을 당한거에요. 영영 이별입니다. 머리가 백지장이죠. 아무 생각이 안나요 이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이씨는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힘을 쓰겠다고 했다. 이씨는 “(서초구청에서 철거 계획을 1차 반려했을 때) 반려 문제점이 뭐였는지 책임자가 확인했는지 조사해서 (문제가 있었다면) 형사책임도 묻겠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3시쯤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관계기관은 건물 붕괴 원인과 철거 과정에서 안전 규정 준수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인부를 조사한 경찰은 합동 감식 결과를 분석한 뒤 보강수사를 통해 과실이 입증되면 공사 관계자를 입건할 예정이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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