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김정은 먼저 만나 트럼프 소개 계획…미국이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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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악수하는 모습을 1일 보도했다. 북측에서 본 사진 뒤편에 남측 평화의집이 보인다. [노동신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악수하는 모습을 1일 보도했다. 북측에서 본 사진 뒤편에 남측 평화의집이 보인다. [노동신문=뉴시스]

지난달 29일 오후 8시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찬이 진행되고 있었다.

판문점 북·미 회담 조연 자처 왜 #청와대 측 “트럼프 최초 타이틀 필요” #문 대통령 “내 역할 안 중요해” 결단 #윤건영이 메시지 들고 판문점 조율

그 무렵 청와대 국정상황실로 “북·미 회담이 성사됐다”는 소식이 전달됐다고 한다. 그날 오전 7시51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한 지 불과 12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정상황실이 바쁘게 돌아갔다. 윤건영 실장은 밤새워 상황을 살피다 30일 오전 8시 판문점으로 달려갔다. 이미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일 “윤 실장은 최종적으로 (회담 형식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 측과 의견을 교환하는 등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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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조금 다르다. 이 관계자는 “이미 만찬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북·미 양자대화가 확정됐고, 이후 문 대통령의 역할을 논의했다”며 “북쪽에서 내려오는 김 위원장을 누가 맞이할지, 회담장 동선은 어떻게 될지 등이 미정이었다”고 전했다.

당초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먼저 만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계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한데 이를 계산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문 대통령이 “내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 북·미 정상이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리면서 상황이 종료됐다고 한다.

그럼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역할은 뭐였을까. 힌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까지만 해도 “경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급작스럽게 이뤄진 회담의 핵심은 경호다. 게다가 접경지인 DMZ(비무장지대) 회담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은 비공개로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다”며 “당시에도 경호 문제가 제기됐지만 하루 만에 해결했고, 이 경험이 참고가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호 문제에 합의한 북·미는 30일 오전 구체적 동선 등을 협의했다. 협의는 한국 쪽 공식 창구인 청와대 상황실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진행됐다. 처음부터 ‘남·북·미’가 아닌 ‘북·미’ 정상회담으로 결정돼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한 실무 관계자는 “당시 북·미는 양자회담을 전제했기 때문에 한국 언론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회담 당시 국내 언론의 생중계 카메라는 북·미 언론에 밀려나며 흔들리는 영상을 송출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회담이 진행되는 53분간 빈방에서 기다렸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타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며 “북·미 접촉은 트럼프 방한이 성사됐을 때부터 계산에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방한은 5월 16일 공지됐다. 청와대는 이를 오전 5시 문자메시지로 알릴 정도로 긴급했다. 곧장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과 북·미 정상의 조우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5월 22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강경 대응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는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라고 비유할 정도로 민감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내내 “중요한 것은 북·미 대화”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참모진을 물리고 문 대통령에게 회담 결과를 귓속말로 직접 전달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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