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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변할 수밖에 없다던 노무현처럼…정부, 민노총과 결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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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회 앞 불법집회를 계획·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1일 영장심사를 마친 뒤 서울남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 석방 촉구 집회에서 김경자 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은 ’우리가 받은 것에 두 배 이상을 갚는 수준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국회 앞 불법집회를 계획·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1일 영장심사를 마친 뒤 서울남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 석방 촉구 집회에서 김경자 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은 ’우리가 받은 것에 두 배 이상을 갚는 수준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민주노총은 현 정부로부터 파트너 대접을 받았다. 정부는 적폐 청산이란 잣대로 지난 정부에서의 ‘피해자’ 개념을 민주노총에 이식했다. 웬만한 불법 시위엔 눈을 감았다. 경찰이 두드려 맞아도, 기물이 부서져도, 공공기관이 점거당해도 그저 묵묵했다. 피해자가 억울함을 분출하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불법시위에 여론까지 나빠져 #김명환 위원장 구속, 민노총 충격 #노무현, 집권 중반 노동계 만나 #“국정 챙기다 보니 변했습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할 때만 해도 “구속영장이야 치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던 까닭이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필요성에 대한 증빙자료는 의외로 치밀했다. 법원이 받아들였다.

민주노총은 격앙했다. 설마가 현실이 되면서 충격의 강도는 예상보다 컸던 듯하다. “더는 촛불 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다.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파트너십 파기다.

현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거의 수용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비정규직 제로(0)”선언을 했다. 최저임금을 확 올리고, 근로시간 단축을 단행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도 강행할 태세다. 노조를 만들고,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사실상 제한 없이 구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다.

법을 바꿀 때도 민주노총의 의견을 수용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도 그랬다. 김명환 위원장은 1월 말 대의원 대회에서 “경사노위 법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담았다. 우리가 반대하면 의결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마음대로 국정을 좌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비칠 지경이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들 뜻대로 3월 경사노위 본회의를 무산시켰다. 회의에 참석하려던 문 대통령의 일정이 어그러졌다. 이후 본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들어줬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너무 일방적이라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며 내쳤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십자포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중반기 노동계 인사들과 오찬에서 “변했다고요? 단언컨대 변했습니다. 국정을 챙기다 보니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디다”라고 말했다. 데자뷔처럼 이런 기류가 정부·여당에 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여론도 비슷하다. 불법행위에 대한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에 질타가 쏟아졌다. 법과 원칙이라는 원론적인 국가 지지대에 대한 우려가 퍼졌다. 정부로선 법치에 대한 사인을 국민에게 줄 필요가 있다. 심각해지는 경제를 반전시키기 위한 노사관계의 변화도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총단결 강력 투쟁”을 선언을 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지난 3월 총파업에선 전체 조합원의 1%도 안 되는 3000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동력이 거의 상실된 상황이다. 르노삼성차에서 보듯 산업 현장의 노조 이탈 현상도 심상찮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등 변화를 꾀하지 않는 한 노정 갈등이 향후 정부의 민주노총 털어내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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