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정부 꿈꾸는 '제조업 르네상스', 공수표 안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2030년까지 제조업 부가가치율을 선진국 수준인 30%로 높이고 세계 일류 상품 기업을 현재의 2배(573곳→1200곳)로 늘리는 '세계 4대 제조 강국'(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19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경기 안산시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노동생산성은 현재보다 40% 높일 계획"이라며 "제조업 생산액 중 신산업·신품목 비중을 16%에서 30%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제조업 르네상스는 지난해말 "경제정책이 안 보인다"는 비판 가운데 문 대통령이 '뼈 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며 특별 지시한 것이다. 6개월뒤 나온 정부 목표는 야심차다. 그러나 갈 길은 멀어보인다. '반성문'은 국책연구기관이 먼저 썼다. 산업 부가가치의 30%인 제조업이 지난 10여년간 질적 성장에 실패했다는 산업연구원 보고서가 올해 초 나왔다. '한국 산업의 발전 잠재력과 구조 전환 방향'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총생산액 내 부가가치 비율)은 2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국 평균인 30%에 못 미쳤다.

부가가치 성장률은 2000~2010년 9.2%에서 2010~2017년 4.5%로 반 토막 났다. 생산(9.5%→2.4%), 수출(10.5%→2.8%) 등도 뒷걸음질 쳤다. 노동생산성(노동자 1명이 일정 기간 산출하는 부가가치)도 저하됐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노동생산성 지수(2010년 100)는 2017년 4분기 110.3였다가 지난해 4분기 107.6으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노동시간(분자)이 줄기 때문에 원래는 수치가 올라야 정상이다.

반도체 등 세계 1위 기업을 둔 한국이 주춤해진 이유는 경쟁력 하락이다. 대한상의가 제조업체를 조사한 결과 ▶신흥국과의 경쟁력 격차가 줄고▶신기술 활용이 어렵고▶미래 수익원 확보가 어렵다는 고민이 나왔다. 보다 '솔직한' 고민은 늘어나는 비용과 어려운 가업 승계 등일 것이다.

각국 정부는 기업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해 세금부터 손봤다. OECD 회원국 중 법인세율이 최고수준이던 미국은 세율을 21%(당초 35%)로 낮췄다. 일본도 30%가 넘던 세율을 내년 20%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러자 미·일 내에 있는 해외 기업들까지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고용창출은 덤이었다. 반면 올 1분기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투자 금액은 사상 최대였고, 국내 설비투자는 17% 넘게 줄었다(기재부). '팀플(팀플레이)'해도 모자란데 각자도생의 '팀킬'이 될 처지다. 정부가 기업을 설득하고 유인하지 않는 한, 탈(脫)코리아 현상은 반복될 수 있다. 정책의 '공수표 남발'으론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도 실망만 할 건 아니다. 이런 고민을 1990년대 스웨덴도 했다. 1인당 글로벌 제조기업이 가장 많고, 세계 1위 연구·개발 투자국가지만 산업적 성과가 적은 '스웨덴 패러독스(역설)'가 있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고, 중소기업 기술 접근성이 낮다는 점(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분석)도 우리와 비슷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달 스웨덴을 국빈방문하며 "제조업 르네상스가 민간 주도로 이뤄진 스웨덴을 주목하자"고 말했다.

실제로 스웨덴이 확 달라진 건 민간의 제안이 정책에 반영되면서다. 대기업은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받지 않는 대신, 투자재원의 30∼50%를 내고 연구결과를 사업에 활용해 성과를 냈다. 투자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은 정부가 지원하는 산·학·연 프로젝트에 참여해 '과실'을 누렸다. 산업 정책이 기업을 살리는 '선물'이라면 진짜 선물은 주는 이가 아닌, 받는 이가 필요로 하는 걸 줘야 한다는 심플한 논리를 기억하자. 기업의 생명은 소비자가 쥐고 있듯, 정부 산업 정책의 '소비자'는 기업이라는 사실 말이다.

경제정책팀 서유진 기자

서유진

서유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