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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이한열과 탱크맨, 그리고 홍콩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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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준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정치팀 기자

김준영 정치팀 기자

‘딸깍’ 셔터 소리에 담긴 찰나는 때때로 진짜 현실보다 더 강한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기억이란 것은 구원의 행위를 함축하고 있다. 기억되고 있는 것은 부재로부터 구제되어 온 것이고, 잊혀지고 있는 것은 버림받아 온 것이다”라고 존 버거는 썼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티셔츠를 입은 한 청년이 친구 품에 축 늘어졌다. 귓불을 타고 내려온 빨간 피와 눈길을 잃고 아스라이 비친 흰자위는 시민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로이터통신 사진 기자 정태원은 이한열 열사를, 뜨거웠던 1987년 6월을 구원했다.

1989년 6월 5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맨몸으로 탱크 행렬을 막아선 남성이 있다. 흰색 와이셔츠에 쇼핑백을 든 혈혈단신 탱크맨의 굴기(崛起·우뚝 섬)는 AP통신 사진 기자 제프 와이드너가 구원했다. 중국이 지우려 무던히 애쓰는 이 사진은, 바깥세상으로 퍼져 중국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있었노라 똑똑히 되새기게 하는 상징이 됐다.

2019년 6월, ‘범죄인 인도 법안’(중국 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인들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적은 탱크맨 사진을 거리 곳곳에 붙인다. 대륙은 당황했다. 중국 정부가 임명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법안 추진을 보류했다. 홍콩 언론은 거리에 나붙은 탱크맨이 당국에 30년 전 ‘톈안먼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 때문이라 해석했다.

캐리 람의 사과 이후에도 홍콩의 밤거리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한국어로 울려 퍼진다. 국내 체류 중인 홍콩 유학생들은 ‘6월 민주 항쟁 홍콩에서?’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대학 게시판에 붙이며 한국인들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한데 우리의 답가는 들리지 않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홍콩인도 종북이냐”는 외마디 자중지란은 슬프다. 알지도 못하는 6월 항쟁을 공부하고, 발음도 어색한 한국 민중가요를 부르는 홍콩인에게 보이기엔 부끄러운 민낯이다. 빗발치는 탄환과 눈코를 틀어막는 최루탄,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한 기억은 우리에게도 있다.

김준영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