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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 총수의 황당 갑질···임직원에 김치·와인 팔아 33억 챙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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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보석' 논란을 빚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뉴스1]

'황제 보석' 논란을 빚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뉴스1]

태광그룹 임직원이 2014~2016년 회사로부터 받은 김치ㆍ와인은 기분 좋은 선물이 아니었다. 이호진(57) 전 태광그룹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의 김치ㆍ와인을 높은 가격에 대량 구매한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전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 등 최고경영진과 법인은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김치ㆍ와인을 개인 돈벌이에 활용했다. 먼저 고급 회원제 골프장인 휘슬링락CC를 김치 판매 통로로 활용했다. 휘슬링락CC는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2011년 개장 이후 영업 부진에 따라 줄곧 적자를 내는 ‘골칫덩이’였다.

김기유 실장은 2013년 이 전 회장 지시로 휘슬링락CC 실적 개선을 위해 김치를 만들어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하는 계획을 세웠다. 김치 판매 단가는 10㎏당 19만원. 일반 김치가 10㎏당 6만~7만 원대에 팔리는 데 비하면 3배 수준이었다.

‘아래’에선 일사불란하게 김치 사들이기에 나섰다. 휘슬링락CC 김치를 임직원 수를 기초로 계열사에, 계열사는 다시 부서별로 구매량을 할당했다. 계열사는 김치를 회사비용(직원 복리후생비, 판촉비)으로 사들여 직원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일부 계열사는 김치 구매 비용이 회사 손익에 반영되지 않도록 사내근로 복지기금을 활용했다.

직원 전용 온라인 쇼핑몰도 여기 활용했다. 임직원에게 김치를 살 때만 쓸 수 있는 포인트 19만점을 제공한 뒤 임직원 의사와 관계없이 취합한 주소로 김치를 배송했다. 배송이 끝나면 김치 포인트를 일괄 차감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2014~2016년에 걸쳐 임직원에게 떠넘긴 김치가 512t(95억5000만원 어치)에 달했다. 김치 판매 영업이익률만 43.4%~56.2% 수준이었다.

와인도 비슷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여기엔 총수 일가가 100% 출자해 2008년 설립한 메르뱅을 활용했다. 김치와 달리 임직원 ‘명절 선물’로 강매하는 방식이었다. 태광 경영기획실은 2014년 ‘그룹 시너지’를 제고한다며 계열사 선물 제공 시 메르뱅 와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계열사는 임직원 선물 지급기준을 개정한 뒤 복리후생비 등 회삿돈으로 와인을 사들여 설ㆍ추석 때 임직원에게 지급했다. 이런 식으로 2014~2016년에 걸쳐 사들인 와인이 46억원 어치에 달했다.

김치ㆍ와인 구매 물량을 늘려가던 태광은 공정위가 2016년 조사에 착수하자 이런 행위를 중단했다. 김치ㆍ와인 구매를 통한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규모는 최소 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기흥 공정위 지주회사과장은 “대기업 계열사가 총수 일가의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 합리적인 고려ㆍ비교 없이 상당 규모의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지속해서 감시하고 위반행위를 적발할 경우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1년 구속기소 됐다. 건강상 이유로 곧바로 풀려난 뒤 술ㆍ담배를 즐기는 모습이 보도돼 ‘황제 보석’ 논란에 휩싸였다. 법원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옥살이 때문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경영기획실을 통해 사실상 그룹을 지배해왔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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