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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 아름답고…' 원두막에 앉아 도연명을 읽는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1)

관조의 마음으로 비를 바라본다. 원두막 양철지붕 위 빗소리를 듣노라니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듯 하다. [사진 권대욱]

관조의 마음으로 비를 바라본다. 원두막 양철지붕 위 빗소리를 듣노라니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듯 하다. [사진 권대욱]

산막 생활에는 많은 기계와 공구가 필요하다. 잔디깎기, 예초기, 트리머, 블로워, 엔진톱 등 각종 공구들. 수시로 점검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고장 나고 부서지고 말썽을 부린다. “기계를 잘 다루려면 기계 사용법을 완벽히 숙지하고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계양공구 젊은 사장에게 무지 혼나며 배운다.

초크 사용법, 뽁뽁이 사용법, 플러그 분해 및 조립법 등등. 배우면 뭘 하나. 잠시뒤 또 잊어버릴 텐데. 나만 잘하면 뭣하나. 함 사장, 하 원장도 다 잘해야지. 산막 관리 쉽지 않다.

잔디 깎기는 다했고 이제 예초 작업만 하면 된다. 올해 첫 깎기다. 명섭, 준형 오면 할까 하다 날씨도 좋고 미룰 이유도 없어 바로 시작했다. 두시간 만에 다 끝냈으니 얼마나 큰 진보냐. 전 같았으면 온종일 씨름하고도 미진했을 거다. 기계 덕분이기도 하고 협업 덕분이기도 하고 숙련 덕분이기도 하니 덕분이 많다. 다음 주 손님맞이는 대충 끝났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아시는가? 할 일 다 한 사람의 한가로움을. 잘 깎여진 파란 잔디를 보는 마음을.

나 홀로 즐기는 산막의 캠프 파이어

산막의 캠프 화이어는 또 하나의 낭만이다. 여럿이 해야 맛이지만 혼자해도 좋다. 해 뉘엿 기울고 온 사방이 차분해지는 이 시간이 나는 좋다. 들리나니 물소리, 새소리뿐. 화톳불 연기가 밤 안개처럼 낮게 드리우고 지난 일을 돌아보며 마음이 한가로워지는 이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불은 참 묘하다. 겸허하고 숙연하게 만든다. 한없이 너그럽게 만든다. 이 모든 것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것을 알게 한다.

새끼는 다 예쁘다. 그중에서 강아지는 특별하다. 이곳 누리는 3년에 매번 8마리씩 24마리를 생산했다. 뽈뽈 기어 다니니 귀엽고 보긴 좋으나 말썽도 많아 걱정이다. 날이 더워 그런가 데크 밑으로 기어들어갔던 녀석이 그만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버리는 사고가 두 번이나 벌어졌다. 그때마다 피스를 푼다, 못을 뺀다, 낑낑거리며 마루장을 걷어내어 겨우 수습은 했다만 사람 없을 때 이러면 큰일이지 싶다.

산막에선 나를 강쥐들이 먼저 반기고 계곡 물소리가 장쾌하다. 아름다운 산막. 나는 장작을 나르고 강쥐들을 애정하고 읽을 책을 고르며 산막의 아침을 연다. [사진 권대욱]

산막에선 나를 강쥐들이 먼저 반기고 계곡 물소리가 장쾌하다. 아름다운 산막. 나는 장작을 나르고 강쥐들을 애정하고 읽을 책을 고르며 산막의 아침을 연다. [사진 권대욱]

이 세상에 무엇이든 좋기만 한 일은 없다. 반드시 그에 상응한 수고가 따른다. 세상살이가 그러함을 깨우치는 산막은 그래서 늘 배움의 터전이요, 학교다. 산막은 학습과 배움의 장소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는 이만하면 되었다만,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의 기쁨을 바란다면 과욕일까 모르겠다.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야 말해 무삼하리요. 점심은 계란 탁 라면 하나. 하나 남은 계란을 깨 넣자니 아쉬움은 남고… 저녁은 삼겹살이다.

모두 바쁘다 하고 바빠서 여유 없다 하니 그런 줄 알겠지만, 한가함은 바쁜 중에 오고 바쁨 속의 한가함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한가함의 진수를 보는 것이라 믿는다. 무엇 때문에 우린 그리 바쁜가?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 내려 바쁘고, 사업가는 돈 버느라 바쁘고, 관리는 영전하기 위해 바쁘고, 부모는 자식 때문에 바쁘고, 자식은 앞날 때문에 바쁘지만(나를 지켜낸다는 것 - 핑차오후이 제36쪽) 자신이 살려고 그리 바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리도 바쁜가?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는 않은가? 남이 해야 할 일 대신하느라 바쁘지는 않은가? 남이 원하는 모습 되기 위해 바쁜 것은 아닌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손님 치른 후의 뒷정리를 마치고 원두막 높이 앉아 陶淵明(도연명)의 시를 읽노라니

“산 기운 지는 해 더욱 아름답고 나는 새 집 찾으니
이 참다운 삶의 의미 말할래야 이미 말을 잊는다“

오늘도 잔디를 깎고 누워 석양을 본다. 산기일석가 비조상연환(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저녁이라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짝지어 돌아오네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의 노랫소릴 들을 것이다. [사진 권대욱]

오늘도 잔디를 깎고 누워 석양을 본다. 산기일석가 비조상연환(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저녁이라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짝지어 돌아오네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의 노랫소릴 들을 것이다. [사진 권대욱]

삶이 이럴진대 나 또한 참 쓸데없는 일로 바쁘다 하며 살았구나. 이제 겉치장뿐인 바쁨은 뒤로 하고 돌아보며 살 때도 되었건만 무슨 미련 그리 많아 떨치지 못하는가? 속세를 벗어나 산림에 은거하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마음이 돌아갈 곳을 찾으라 말하는 것이니(나를 지켜낸다는 것 - 핑차오후이 제37쪽) 마음 돌아갈 곳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큰 축복임을 다시 느낀다. 오늘 산막의 석양과 새소리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큰 축복임을 다시 느낀다.

날이 많이 가물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른 새벽부터 복숭아밭을 돌보고, 나는 누리를 곁에 두고 닭장문을 열며 비를 기다린다. 수도전을 고쳐 닭장 청소를 해야겠고 사료도 보충해야겠으니 정 박사가 오기를 또 기다린다. 비 오는 밤을 기다린다.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잘 자고, 금요일엔 금요일의 일을, 토요일엔 토요일의 일을 기다리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긍정과 소망으로 우리는 산다.

무엇이 그리 거창하겠나. 소소한 일상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겠나? 그래. 와라 비야. 준비 다 됐다. 스피커 뚜껑도 덮었고, 차도 문 앞으로 옮겨 놓았고, 누리도 비 맞지 않게 모셔 뒀고, 술과 안주도 준비했다. 앗, 그런데 닭들이 문제로다. 휘여 휘여 얼릉 들어가라. 비를 기다린다. 나는 비가 좋다.

추적이는 빗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

페북의 과거를 돌아보니 세월도 친구도 많이 변했구나. 5년 전 댓글 답글 열심이던 친구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고, 그때 없던 친구들이 요즘 열심이고, 한동안 뜸했던 옛 친구들이 다시 보이기도 하는구나. 생성 소멸 끝없이 변하는 우주의 천리인데 유한한 인간이야 말할 것 있으랴.

이 또한 5년이면 변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궁금하긴 하다. 그들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추적이는 여름비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있을까? 행복할까? 후드득후드득 빗소리에 너도나도 변하는 세상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보고 싶은 그들에게 시공 없는 내 마음 보내 안녕과 행복을 바라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사람들은 저마다 오늘을 산다. 그냥 있어도 가슴 뛰는 그런 삶이면 오죽 좋으련만 그런 삶은 존재치 않는다.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삶인지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그렇게 일상을 만들어가며 실망하고 또 실망하더라도 희망하며 또 희망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염족지도. 사람들이 부귀와 영화를 좇는 방법을 만일 그 처자식들이 안다면 서로 붙잡고 통곡하지 않는 자가 없으리라. 2500년 전 맹자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염족지도를 행하며 산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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