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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의 최애 아이템, 독서당서 듣는 새벽 빗소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0)

사람들이 묻는다. 왜 산막에 사람들을 불러 밥 먹이고 재우고 놀고 하느냐고.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고. 나는 밥도 안 나오고 떡도 나오지 않지만 사람이 나오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내가 산막에 사람 불러 밥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별 밤 헤아리는 뜻을 사람들은 잘 모를 게다.

한 사람을 연으로 지인들이 모이고 그 지인들이 또 서로 지인들이 되고 그 지인들의 지인들이 또 새로운 지인들이 된다. 교수, 여행가, 방송인, 전문직업인, 연주자, 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대자연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참 자연처럼 자연스럽다. 그저 그 아름다운 과정의 한 부분이고 싶을 뿐,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려 하지 않는다.

유쾌하고 뜻 깊은 자리였다. 바쁘신 분들은 돌아가시고 봄 볕에서 뒷정리. 땀 흘린 뒤의 상쾌함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 노동의 즐거움과 몸과 마음이 따로 아님을 알 것이다. 기억에 남을 것이다. 환상의 저녁노을 멋진 구름과 함께한 뭉친 인연들. [사진 권대욱]

유쾌하고 뜻 깊은 자리였다. 바쁘신 분들은 돌아가시고 봄 볕에서 뒷정리. 땀 흘린 뒤의 상쾌함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 노동의 즐거움과 몸과 마음이 따로 아님을 알 것이다. 기억에 남을 것이다. 환상의 저녁노을 멋진 구름과 함께한 뭉친 인연들. [사진 권대욱]

오늘 돌아가는 이들이 어제 돌아간 이들의 말들에 이어 또 말들을 남길 것이고, 나는 그 말들 속에서 그날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잘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두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 믿는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늘 말하지만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좋아야 일도 좋은 것이다.

산막에 다녀간 사람 1500여명

지난 십수 년 산막에 다녀간 사람이 1500여명 되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고 과목도 없고 누구나 선생이 되고 누구나 학생이 되는 산막스쿨. 거창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초라하거나 남루하지도 않은 그냥 의미 있는 인생학교다. 때로는 서너명이, 많게는 50여명이 함께 하룻밤 좋은 말도 듣고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놀기도 한다.

그 중 함께 노는 일 또한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노래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오랜 경험에 비추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함께 노래 부르는 싱어롱인 듯싶다. 모닥불 아래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귀에 익숙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기억은 오래 남는다.

식기는 깨끗이 씻어 햇볕에 바짝 말린다. 그래야 윤기나고 오래간다. [사진 권대욱]

식기는 깨끗이 씻어 햇볕에 바짝 말린다. 그래야 윤기나고 오래간다. [사진 권대욱]

산막스쿨이 끝나면 그릇들은 씻겨져 햇볕을 맞고, 이불들은 널려져 초하의 양광을 받는다. 바비큐 그릴은 반짝반짝 윤기를 더하고, 나의 것은 나의 것으로, 너의 것은 너의 것으로 제각각 제자리를 찾는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 수고로움에 경의를 표하고 마음에 깊이 담는다. 자장가를 들으며 하늘을 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산막에 애정하는 것이 많으나 그 중 으뜸은 독서당에서 듣는 새벽 빗소리 아닐까 한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양철 지붕을 통해 전해지고 둥지 튼 어린 새소리들이 새벽 적막을 깨울 때면 나는 비 맞지 않는 안온함과 비 온 후의 맑은 계곡을 생각하며 행복해진다.

풍성해질 연못 물과 그치지 않을 낙수 생각에 그 행복을 더 하는 것이니,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은 나만의 시공이다. 늦잠 깬 아내는 아침상을 차릴 것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밥을 먹고 빗소리 들으며 한잠을 달게 잘 것이다.

별 헤는 밤

저녁노을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눈 부시지않다.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 또한 불타는 저녁노을같이 직이불사 광이불요(直而不肆 光而不耀)의 삶으로 이 세상을 좀 살만하게 만드는데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시간을 사랑한다. [사진 권대욱]

저녁노을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눈 부시지않다.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 또한 불타는 저녁노을같이 직이불사 광이불요(直而不肆 光而不耀)의 삶으로 이 세상을 좀 살만하게 만드는데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시간을 사랑한다. [사진 권대욱]

나는 해가 뉘 엿 넘어가고 모든 생명 우주의 천 리 앞에 숨죽여 읊조리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삶과 일과 꿈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이 시간. 오늘은 별이 좋을 것 같다. 별 노래 부르며 이 아름다운 밤을 맞으련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살다 보면 소신껏 살지 못 하는 때가 있다. 때론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부끄러울 수도 있다. 괴로운 일이긴 하나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사기(史記)를 썼고 한신은 과하지욕(胯下之辱, 무뢰배의 무릎 사이를 기는 치욕)을 참으며 후일을 도모했다.

큰 꿈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에 연연치 않는다. 반드시 이룰 일이 있는 사람은 참을 줄 안다. 언젠가는 진실이 통하리란 믿음을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외롭고 서러워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길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길 되어 가고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 되어 그 길가는 사람은 모두가 그렇다. 그렇게 참으며 가는 것이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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