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선

적기조례, 공유경제, 그리고 이상한 신화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들고 뛰는 사람을 둬야 한다는 법(적기조례) 때문에 영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 규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말과 글에서 숱하게 봐 온 주장이다. 한국의 칼럼·기사·논문·보고서에 셀 수 없을 만큼 실렸다. 대통령과 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데, 영국이 자동차 산업 면에서 독일이나 일본, 심지어 한국에도 밀리게 된 것은 정말 국가의 규제 때문이었을까? 1865년에 제정돼 31년간 유지된 ‘붉은 깃발 법’이 자동차 산업을 망하게 했다는데, 그렇다면 영국에서 탄생한 롤스 로이스·벤틀리·애스턴 마틴·랜드로버·재규어·미니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규제로 영국 차 산업 붕괴’는 거짓 #타다=공유경제라는 것도 비상식 #장하성 불평등론 또한 억지 주장

영국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 것은 사실이다. 위에 열거한 업체 중 현재 다른 나라 회사에 팔리지 않은 것은 애스턴 마틴뿐이다. 나머지는 독일의 폴크스바겐·BMW와 인도의 타타에 모두 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이 적기조례 때문에 생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국은 세계 2위(1위는 미국)의 자동차 생산국이었다.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독일·프랑스·일본 자동차 산업의 급성장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 세 나라는 2차대전 후 경제 부흥의 꿈을 키우며 자동차 생산을 주력산업으로 삼았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으로 개발의 집중화와 생산의 대량화가 진행됐다. 반면 영국에서는 수십 개의 자동차 회사들이 난립한 상태에서 제각기 각자도생의 길로 갔다. 1970년대부터 합병·국유화 등의 비상조치가 동원됐으나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때였다. 영국 자동차 산업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은 적기조례라는 과잉 규제가 아니라 정책 부재 상황을 초래한 국가 방임주의였다.

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것이 ‘타다’다. 이를 ‘공유경제’의 새로운 모델처럼 말한다. 공유경제 발전에 대한 기사 중 타다를 대표 사례로 꼽지 않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인지 모두지 알 수가 없다. ‘우버’의 아이디어는 ‘집에 세워 둔 차로 다른 사람에게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다. ‘우버’ 영업을 위해 차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본래 아이디어대로 ‘노는 차’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면 공유경제의 모델에 부합한다. 그러나 타다 승합차는 노는 차가 아니라 사실상 택시 영업을 위해 준비한 차량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탈 수 있기 때문에, 또는 승객들이 계속 타고 내리기 때문에 ‘공유’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택시도 마찬가지다. 타다를 공유경제 범주에 넣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임금 격차가 불평등 사회의 주범’이라는 주장도 이상하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중국 대사)은 자신이 쓴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한국에서 불평등한 상황으로 인하여 절대다수의 국민이 경제적 고통을 겪는 것은 재산 불평등보다는 ‘버는 것’의 격차, 즉 소득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 불평등이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재산격차가 아니라 임금격차가 만들어낸 것’이라고도 했다. 이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토대다. 믿기 어렵지 않은가? 돈이 많아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은 변호사·의사·연예인 등의 고소득 직종 종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래 ‘금수저’였거나 보유 부동산과 주식의 가치 상승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지 않은가? 장 전 실장은 책에서 ‘한국의 평균적인 가계의 경우에는 재산의 대부분이 주택이기 때문에 재산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소득이 높은 것은 아닌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물주, 고소득 임대사업자, 고액 배당 소득자는 어디로 갔나?

여러 학자가 뒤늦게나마 장 전 실장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가처분소득 격차지수는 줄고, 순자산 격차지수는 커졌다. ‘자산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장 전 실장의 바람대로 국민이 모두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사회가 된다면 현재의 자산 불평등 구조가 고착되지 않을까?

시민을 현혹하는 주장이 무비판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는 일이 많아졌다. 틀린 말을 해도 우리 편이 한 것은 맞는 것이, 맞는 말을 해도 상대편이 한 것은 틀린 것이 된다. 옳다, 그르다는 뒷전이고 좋다, 나쁘다가 우선이다. 비상식이 활개 치기에 좋은 세상이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