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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이후 최대‥‥사제단 비상총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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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소속 신부 2백여 명은 31일 오후3시부터 서울 명동성당 내 카톨릭회관에서 비공개 비상총회를 갖고 문규현 신부 파북 등 시국문제 전반에 관해 자정까지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관심의 초점이 됐던 9시간 회의의 안팎을 종합해 본다.
○…문규현 신부 파북 및 남국현 신부 등 사제단 신부 3명의 구속사태에 따라 최근의 공안정국과 통일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지난달 31일 오후3시 서울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비상총회는 애당초 관계당국이 기껏 60여명정도 참석하리란 예상을 뒤엎고 87년 6·10항쟁이후 최대규모인 2백여 명이 참석.
총회는 예상외의 다수 참가자에 힘입어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듯 문신부의 파북 등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만장일치로 추인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비상총회는 카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 예정이었으나 미리 다른 예약이 되어있어 7층 대강당으로 옮겨 진행.
사제단 주최의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도 처음에는 성당본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3층 대강당에서 여는 것으로 낙착.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지난달 27일 주교단이 문신부 파북에 대해 『마땅찮다』는 결정을 내린 점등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주교단과 사제단의 시각 차에서 오는 갈등 때문으로 분석.
○…이날 비상총회에서 사제단 측은 회의가 시작되자 보도진의 출입을 일체 막고 철저한 비공개회의로 진행했다.
또 사제단은 대외창구도 임시대변인인 장용주 신부 한사람으로 한정한 채 다른 신부들은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대해 『장 신부에게 물어 보라』며 회의내용을 일체 함구하는 등 극히 신중을 기했다.
회의도중 함세웅 신부가 회의장에 들어가자 「주교단의 뜻이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함 신부는 회의장에서 침묵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사제단은 당초 이날 오후6시30분 비상총회를 마친 뒤 공식기자회견을 갖기로 했으나 정작 약속시간이 되자 『회의가 끝나지 않아 내일 오전이나 되어야 입장을 발표할 수 있겠다』고 연기를 통보.
임시대변인 장 신부는 기자들에게 『아직 절반밖에 진행되지 않아 철야회의를 해야되겠다』며 『다만 한가지 문 신부 파북에 대해 만강일치로 추인키로 결정했다』고만 간략하게 밝혀 이날 회의가 통일 문제·공안정국 등 시국전반에 대해 심각하게 진행되었음을 암시.
사제단은 장 신부의 발표를 끝으로 일단 휴회, 30여분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3층 대강당으로 옮겨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준비관계로 오후7시30분이 되어서야 미사를 시작.
○…이날 미사에는 오후6시30분쯤부터 청·장년층 남녀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 오후7시쯤에는 3층 대강당에 5백여 명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꽉 들어찼다. 결국 입장하지 못한 5백여 명은 회관 앞 광장에서 묵주기도 등을 하며 대기.
미사장소인 대강당 안은 섭씨30도를 웃도는 더위로 그야말로 한증막을 방불케 해 참석자들은 비오듯 땀을 흘렸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를 진행 이날의 뜨거운 분위기를 나타냈다.
미사가 진행 중이던 오후8시15분쯤에는 6일10째 단식농성을 하다 미사에 참석한 전교조 경북지부소속 김명회 교사가 졸도, 복도로 업혀 나와 한동안 동료들의 간호를 받고 깨어나기도.
○…미사도중 강론에서 유강하 신부(60·안동교구)는 『우리는 그 동안 북한형제들을 아주 잊어버려야할, 송두리째 쳐 없애야 할 원수라 생각했어야 했고 온통 증오와 적대감 속에 살아왔다』고 개탄하고 『통일 논의를 더 이상 사목의 관심 바깥에 둘 수 없다』고 선언.
유 신부는 또 『지난해 7·7선언이 나오자 민족분단의 응어리진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던 국민들은 손뼉치며 환호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은 여전하고 감옥 가는 사람들이 줄서 있는 현실에 더 큰 실망과 비통함과 한이 쌓이고 있다』며 『이제 사제들은 의로운 분노로 이 사기극에 정면 도전, 자신들을 던져 분단과 마음의 맥을 부수기 위해 예수를 따라 몸을 던지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 나아가 유 신부는 『우리들은 임양 위에 던져질 온갖 비난과 돌덩어리를 함께 하기 위해 문 신부를 보냈으며 민족화해의 씨앗이 되기 위해 자신을 던질 것』이라고 강론. 미사에 앞서 서울지역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천주교 도시빈민회·서울지역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등 18개 단체이름의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님에 대한 구속 만행에 분노를 느끼며 」란 제목의 유인물이 배포되기도 했다.
○…미사에 이어 오후9시부터 카톨릭회관 앞 광장에서는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등 카톨릭 18개 청년단체회원 4백여 명이 「조국통일기원과 통일운동 탄압저지를 위한 철야기도」에 돌입.
이들은 각자의 손에 촛불을 켜들고 『구속된 신부들의 석방을 위해』 『위정자들의 회개와 국민을 탄압하는 공안정국의 종식을 위해』 『임양과 문 신부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밤새 기도.
○…한편 명동성당에서 6일째 단식농성중인 전교조 소속 교사 5백50명도 이날 오후7시쯤 성당입구에서 30여분간 침묵시위를 벌인 뒤 이들 중 1백여 명이 카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뒤 다시 철야기도회에도 동참.
또 명동성당에서 13일째 농성중인 노점상 1백여 명도 미사와 철야기도회에 참석하거나 기도회장 주변에 모여 자리를 함께 했는데 기도회 도중 노점상 대표가 연단 앞으로 나와『통 일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이날 밤11시50분쯤 비상총회를 끝내고 총회에서 결정된 방침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기 위해 곧바로 상임위원회를 열었다.
각 교구 대표들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성명서의 내용, 단식농성의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1일 새벽까지 논의.
○…사제단의 비상총회가 끝난 31일 밤 11시50분쯤 서울교구 소속 박대웅 신부는 철야촛불기도회가 열리고 있던 카톨릭회관 앞 광장에 내려와 궁금해하는 카톨릭 청년회원들에게 주요의결사항을 발표.
박 신부는 『소속 신부 전원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공개질의를 담고있는 성명서를 채택할 방침』이라고 전언.
이에 2백여 명의 카톨릭 청년회원들은 환성을 지르며 『신부님들의 단식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즉석에서 단식농성에 동참하기로 결정.

<김기봉·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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