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2시쯤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들어선 이성림(64)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은 가슴에 묵직한 책을 안고 눈시울을 적셨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그는 품고 있던 『여성문제연구회 50년사』를 펼쳐 보이며 이 여사를 추억했다. 책 속에는 이 여사가 1952년 여성문제연구회(당시 여성문제연구원)을 세운 뒤 회원들과 함께 투쟁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 2대 회장을 지냈다.
이성림 회장은 "이 여사는 연구회 설립 당시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준비할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었다"면서 "출판부장으로 연구회 활동을 시작했던 이 여사의 적극적이고 똑똑한 모습이 인정받아 2대 회장으로 선출됐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책 속에는 이 여사가 생전에 회원들 앞에서 연설하거나 단체 창립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한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여사의 빈소에는 다른 여성활동가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4시쯤에는 이 여사가 몸담았던 한국YWCA연합회의 한영수 회장과 이행자, 이명혜 전 회장이 조문했다. 한 회장은 "4년 동안 총무를 맡았던 이 여사는 소외된 사람과 여권 신장을 위해 많은 일을 했던 분"이라며 "가족법 개정에도 나서 법적으로 이 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힘썼다"고 말했다.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인 이 여사는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법률 개정 운동에 매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족법 개정 운동이다.
1950년대 제정 당시부터 남성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했던 민법을 고치기 위해 이 여사는 개정 운동을 벌였다. 자신의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서 이 여사는 “다른 정치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족법 개정 문제만큼은 내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남녀차별금지법' 탄생에도 힘을 보탰다.
회사원 김모(27)씨는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희호 여사만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죄송하면서도 민주화와 여성 운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