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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史' 책 안고…여성계, 고 이희호 여사 추모 발걸음

중앙일보

입력

1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고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이성림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이『여성문제연구회 50년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 2대 회장을 지냈다. 남궁민 기자

11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고 이희호 여사 빈소를 찾은 이성림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이『여성문제연구회 50년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 2대 회장을 지냈다. 남궁민 기자

11일 오후 2시쯤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들어선 이성림(64)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은 가슴에 묵직한 책을 안고 눈시울을 적셨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그는 품고 있던 『여성문제연구회 50년사』를 펼쳐 보이며 이 여사를 추억했다. 책 속에는 이 여사가 1952년 여성문제연구회(당시 여성문제연구원)을 세운 뒤 회원들과 함께 투쟁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회 2대 회장을 지냈다.

이성림 회장은 "이 여사는 연구회 설립 당시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준비할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었다"면서 "출판부장으로 연구회 활동을 시작했던 이 여사의 적극적이고 똑똑한 모습이 인정받아 2대 회장으로 선출됐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책 속에는 이 여사가 생전에 회원들 앞에서 연설하거나 단체 창립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한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1997년 여성문제연구회를 방문한 이희호 여사(앞줄 가운데)를 맞은 회원들. [여성문제연구회 제공]

1997년 여성문제연구회를 방문한 이희호 여사(앞줄 가운데)를 맞은 회원들. [여성문제연구회 제공]

이 여사의 빈소에는 다른 여성활동가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4시쯤에는 이 여사가 몸담았던 한국YWCA연합회의 한영수 회장과 이행자, 이명혜 전 회장이 조문했다. 한 회장은 "4년 동안 총무를 맡았던 이 여사는 소외된 사람과 여권 신장을 위해 많은 일을 했던 분"이라며 "가족법 개정에도 나서 법적으로 이 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힘썼다"고 말했다.

1954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직전 여성문제연구회 회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이희호 여사. [여성문제연구회 제공]

1954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직전 여성문제연구회 회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이희호 여사. [여성문제연구회 제공]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인 이 여사는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법률 개정 운동에 매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족법 개정 운동이다.

1950년대 제정 당시부터 남성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했던 민법을 고치기 위해 이 여사는 개정 운동을 벌였다. 자신의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서 이 여사는 “다른 정치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족법 개정 문제만큼은 내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남녀차별금지법' 탄생에도 힘을 보탰다.

회사원 김모(27)씨는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희호 여사만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죄송하면서도 민주화와 여성 운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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