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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아들 집착이 前남편 원한돼…고유정, 경계성 성격장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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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제주도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고유정(36)이 성격 장애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석 달 전 네 살배기 의붓아들이 숨진 일과 최근 친아들(6) 양육권을 두고 가사 소송을 벌여온 전남편 강모(36)씨와의 갈등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범죄 심리학자들 “성격장애 가능성 커” 분석 #“의붓아들 사망·양육권 다툼이 범죄 도화선” #경찰, 계획 범죄 가능성에 무게 두고 수사중 #피해자 혈흔에서 수면제 일종 ‘졸피뎀’검출도

이수정 경기대(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고유정이 잔혹한 살해 사건을 벌이기에 앞서 그의 결혼 생활과 심리상태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고씨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경계성 성격장애는 정서불안을 동반한 성격장애의 한 종류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도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이날 면접교섭 재판을 통해 2년 만에 친아들을 보러 갔다 변을 당했다. 이 아들은 그동안 고씨의 제주도 친정에서 조부모와 살았다. 고씨는 강씨와 2년 전 성격 차이 등을 이유로 이혼한 상태다.

고씨는 이후 2017년 제주도 출신의 현 남편 A씨와 결혼해 충북 청주에서 살았다. A씨는 제주도 친가에 살던 아들(4)을 지난 2월 28일 청주로 데려왔다. 그런데 이 아이가 사흘 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어 있어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사인을 조사한 경찰은 최근 “질식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뚜렷한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5일 제주경찰이 인천 소재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 사건 피해자 전 남편 시신을 수색하는 모습.[뉴스1]

지난 5일 제주경찰이 인천 소재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 사건 피해자 전 남편 시신을 수색하는 모습.[뉴스1]

이 교수는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강씨에게 맡기고 부담 없이 새 혼인 관계를 이어가면 되는데, 고씨는 친자 양육권을 갖고 있으면서 현재의 혼인 관계를 이어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그런 와중에 제주도에 맡겨놨던 A씨의 아들이 사망하면서 혼인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새로 시작한 결혼 생활이 제주도에서 올라온 방해물(숨진 의붓아들) 때문이라는 고씨의 왜곡된 생각에서 ‘제주도와 인연을 끊으려면 전남편을 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고씨의 ‘경계성 성격장애’를 의심했다. 그는 “이런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라며 “석 달 전 의붓아들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에서 의붓아들에 대한 병적 집착이 전남편에 대한 원한으로 전이됐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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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전남편 강씨와의 양육권 다툼을 살해 동기로 추정하는 전문가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이혼한 남성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전 부인을 괴롭히려고 양육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고유정 자신이 직접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음에도 2년간 전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줬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고씨는 전남편과 이혼했지만, 아이를 통해 ‘내가 너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각인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며 “아들 양육권을 잃게 됐을 경우 강씨를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이 지난달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일부 물품을 환불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공개했다. [뉴스1]

10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이 지난달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일부 물품을 환불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공개했다. [뉴스1]

그는 이어 “고유정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남은 물품을 반납해서 환불까지 받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볼 때 당시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이코패스라 말하긴 힘들지만, 고씨가 죄책감이라든지 후회, 괴로움을 느끼는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고유정은 여전히 우발적 살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이 성폭행하려 했고, 이를 막기 위해 수박을 자르려고 산 칼을 이용해 우발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대경 동국대(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한 점, 휴대폰으로 범행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전에 준비된 계획 범행으로 볼 수 있다”며 “성폭행 진술도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한 대응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고유정의 범행 동기와 살해방법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10일 고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이불에서 채취한 혈흔을 국립과학수사원에서 검사한 결과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제주=최충일 기자,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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