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도 ‘혁신’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것이라면 거부하고, 낡은 것이라면 끌어안는 것이 보수라는 착시에서 자유한국당은 벗어나야 한다. 그게 원로 소설가 이문열씨가 지난 8일 황교안 대표에게 충고한 말의 함의(含意)라고 본다. 이날 황 대표는 경기 이천시에 있는 이씨의 사숙(私塾) 부악문원을 찾아가 1시간 동안 차담을 했다. 차담 후 황 대표는 자세한 대화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이씨가 면담 전 몇몇 언론에 밝힌 내용을 보면 어떤 말이 오갔는지 유추가 가능하다.
이씨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이 시점에 맞는 보수 세력만의 변혁과 개혁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전 사람들만 데리고 간다면 ‘가마솥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씨는 또 다른 언론과의 통화에서도 “한국당에서 죽는 작업이 흐지부지했다”고 말했다. “그때 강력한 기세로 ‘보수야 죽어라. 죽어서 새롭게 자라라’고 한 얘기가 받아들여졌느냐”고도 되물었다. 이씨의 말 대로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 해체론’까지 불거질 정도로 “사람을 포함해 모든 걸 싹 바꾸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한국당은 지방선거 이틀 뒤인 6월 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의원 전원이 무릎을 꿇은 채 이른바 ‘반성문’을 발표했다. ▶거친 발언과 행태가 국민 마음을 더욱 멀어지게 했고 ▶정부의 경제·민생 실정에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으며 ▶혁신을 위한 처절한 반성이나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도 없었다고 고백하면서, 환골탈태를 다짐했다.
이씨의 말은 당시의 여론과 한국당의 약속을 환기하고 있다. 툭하면 막말 논란을 일으키면서 정책대안은 부재한 지금의 모습을 보면, 1년 전 반성문 속의 한국당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인적청산론은 왜 유야무야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이씨가 큰 틀에서 강조한 정당의 변혁이나 개혁은 다른 말로 혁신이다. 혁신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일하는 방식을 능률적으로 바꾸는 것도, 낡은 제도나 관습·문화를 바꾸는 것도 모두 혁신이다. 하지만 이씨가 좀 더 무게를 둔 것은 ‘인적 혁신’이다. 물론 인적 혁신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으로 실각한 한국당이 충분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변신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인적 혁신 없는 혁신은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당은 이씨의 고언을 가감 없이 새겨들어야 한다. “죽어서 새롭게 자라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