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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총, 균, 쇠 다음은 첨단 소재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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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무기, 병균, 금속이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를 고찰한 세계적인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이미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세 가지 중 인간이 4000여 년 전 발견한 철은 인류 문명을 꽃피우는 동시에 문명 간의 불평등을 초래한 소재이기도 했다. 철 다루는 기술을 가진 국가는 부강해졌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철의 시대를 이을 다음 주인공 중 하나가 ‘21세기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첨단 소재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 소재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철이 그랬듯이 첨단 소재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초석 산업이 되어 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다가오는 또 다른 산업혁명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첨단 소재는 극미세한 나노분야서부터 우주개발까지 활용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마법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은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며,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실리콘보다 전자의 이동 속도가 140배 이상 빨라진다. 또한 빛을 대부분 통과시키는 투명한 소재라는 점에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나 태양전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래핀이 소개된 지 15년이 됐지만 비싼 가격과 까다로운 제조공정 때문에 상용화까지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이렇듯 첨단 소재는 연구개발에서 상용화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고 실패 가능성도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제품이나 부품의 성능과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십여 년간 ‘핵심소재원천기술’ ‘세계최고소재기술’ 등 도전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불모지였던 국내 소재산업을 육성시켜왔다. 수입에만 의존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소재의 일부분은 국산화에 성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소재개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련 R&D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부처 간, 사업분야 간 칸막이를 제거해 융합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육상경기 중에는 계주, 즉 이어달리기라는 종목과 같다. 주자 모두의 능력도 출중해야 하지만 바통을 주고받는 기술과 타이밍이 승패를 좌우한다. 정부의 R&D투자와 지원, 출연연의 연구개발, 해외기술의 적극적 이전, 기업의 상용화가 완벽한 팀을 이뤄 ‘첨단소재기술개발’이라는 글로벌 경기에서 승리해 대한민국이 제조업 분야 글로벌 4강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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