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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시인학교|시인과 독자가 만난 「정서적 합숙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월간 시지 『심상』이 해마다 개최하는 「해변시인학교」가 올해에도 동해안의 사천진리 해수욕장에서 개설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부산지방의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남해안에서 개설하는 해변시인학교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로 열한번째 열리는 『심상』주최의 이 해변시인학교는 1백50명이 넘는 많은 초청시인과 작가 및 인접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시를 주제로 한 창작실기와 강좌·토론·시극 공연등 정서훈련을 통한 시의 해변축제를 베풀고 있다. 해변시인학교에 참여하는 일반독자는 2백50명인데 비해, 초청 시인등의 강사진은 1백50명을 상회하고 있어 실제로 시인과 독자의 참가비율은 대등하여 시인과 독자의 대화는 좀더 개별적이고 가족적이다.
이른바 「정서적 합숙소」라 불릴 수 있는 이 해변시인학교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독자는 시인지망생이라기보다 며칠간의 강습과 수련으로 시인과 시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찾아오는 쪽이 더 많다. 참가하는 독자의 70%가 여성독자쪽에 치우치지만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대부분이고 70대의 노인에서부터 10대 후반의 문학소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시의 이해를 통해 일상적인 삶의 궤도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낯설게 하기 위한 독자들의 진지한 노력은 시인학교를 찾아온 시인들에게는 경이로움과 작은 감동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몇몇 시인들의 베스트셀러 시집을 제외하면 아직도 시는 우리시대의 소외품목이며, 시인은 사회적인 권력과 부와 외경의 축에서 너무 멀리 비켜나 있다. 어느 외국에서처럼 취업을 위한 입사 면접시험에서 자기나라 시인의 시작품 몇편을 암송하지 못하면 불합격되는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깊이마저 우리는 갖고있지 않다.
스포츠처럼 국가보상제도가 마련되어 금메달을 딴 선수가 평생동안 연금을 수령하는 혜택도, 뛰어난 예술활동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예술가들에게 국립묘지 안장조차 허락 받지 못한 불공평한 사회, 문학예술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이 척박한 시대에 시인은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인들은 시창작을 통한 무상의 행위를 구도자의 열정 이상으로 평생을 통해 하고 있다.
그래도 문인들에게는 문예진흥원의 기금으로 창작출판 보조금고 원고료 지원에 의한 혜택을 골고루 받지 않느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국가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문화예술 진흥정책에서 볼때 그것은 소모성 군것질에 지나지 않는다. 한 영세한 월간 시지 『심상』이 해다마 베풀고 있는 해변 시인학교가 참가한 시인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우리 시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적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인의 자구 노력과 합쳐져 시문호의 사회적 보편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인학교를 보며 생각하는 것은 문호예술정책의 백년대계를 위한 새로운 수정과 입안이다. 평생토록 시예술을 위해 우리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시인을 위한 시비 건립과 시인묘지·시인공원·시인회관 등의 건립과 조성을 우리는 기대한다. 시낭송과 시극공연, 방계창작예술의 공연을 전담하는 시인극장의 건립은 시인들의 부질없는 한여름밤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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