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탤런트 명예검사'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검찰이 명예검사제도를 도입한 건 2004년 5월이다. 대선자금 수사로 뜬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선택했다. 국세청의 명예홍보위원제도, 경찰청의 명예경찰제도 등도 벤치마킹했다. 검찰의 입장에선 돈을 들이지 않고도 스타급 연예인들을 활용해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해당 연예인은 자신들의 공익적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른바 '윈-윈 게임'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안성기 등 초대 명예검사들에 대한 평가가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언론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판단에서다. 안성기의 경우 노련미가 지나치게 강조돼 미디어 노출 효과가 다른 톱스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고, 김은혜 기자는 다른 언론사들이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수종.김태희가 명예검사로 선택된 또 다른 이유에는 미디어 노출 효과를 최대한 높여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효과에만 집착한 데 따른 부작용이 만만찮다. 4월 20일의 행사를 예로 들어 보자. 최수종.김태희는 정상명 검찰총장과 함께 서울 신림동의 정문학교를 찾았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운증후군 등 장애학생 250여 명이 재학 중인 특수학교를 방문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검찰이나 학교 측의 의도와는 달리 이날 행사는 김태희에게 집중됐다. 취재진은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난 김태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췄다. 정 총장 등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 여기저기서 "누굴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최수종은 "무슨 날이 돼야만 찾아오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다소 멋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명의 톱스타와 장애학생들과 함께 붓을 들고 벽화를 그리는 포즈를 취한 정 총장의 어색한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활짝 웃어 봐라" "다정한 표정을 취해 달라"는 주문 속에 이날의 행사는 어수선하게 끝났다. 정 총장은 이후 "의도는 좋았지만 과연 진정성이 있는 행사였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 명의 톱스타가 명예검사로서 한 일은 두 차례의 일일봉사가 전부였다.

검찰도 비판 여론을 인식했는지 3기 명예검사 선정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명예검사로 선정된 톱 탤런트들이 미디어 매체에 나와 "우리 검찰을 예쁘게 봐 주세요" 한다고 거만하고 오만한 이미지의 검찰상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검찰이 "나 몰라라" 하고 국민과의 접촉 창구를 아예 없애라는 소리는 아니다.

대안은 없을까. 이미지만 생각하고 탤런트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을 명예검찰로 선정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이면서도 신뢰받는 검찰상'이라는 목표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명예 감찰위원'이나 '암행 감찰위원' 등을 일반인들에게 맡겨 감찰 결과를 과감히 국민에게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 같다. 국민이 검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것은 피조사자들에 대한 거만한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