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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평등 교육 분탕질' 지적받은 공공기관 간부 “강압적 강의 수용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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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청사. [뉴스1]

경찰청 청사. [뉴스1]

공무원 및 공공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에서 간부들이 '분탕질'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교육 참석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오히려 강사가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9일 충남 아산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강의실에서는 경찰 총경 승진 예정자 57명과 일반 부처 및 공공기관 간부 14명 등 71명이 성평등 교육을 받았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여성학자 권수현 박사는 강의 후 페이스북에 A4용지 3매 분량의 글을 올려 교육생들의 강의 태도를 '분탕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권 박사에 따르면 조별 토론을 진행하려 하자 한 교육생이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소리쳤다. 이어 조별 토론 시간에도 15명 이상이 자리를 비웠고 "귀찮다", "졸리다"는 불평이 나왔다는 것이 권 박사의 주장이다. 권 박사는 페이스북 글에서 "이런 사람들이 기관장이나 경찰서장으로 앉아있는 조직에서 성 평등 행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평등 교육 강의를 진행한 권수현 박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성평등 교육 강의를 진행한 권수현 박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간부들의 수강 태도가 논란이 되자 이날 교육을 받았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간부 A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권 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A씨는 "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감정적 편견과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강의 내용은 미안하지만 수용할 수가 없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경찰 조직에서 여성 비율이 낮다는 강의 내용에 대해 A씨는 "(권 박사가) 여성 경찰 관리자 비율을 절반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강요했다"며 "조직 특수성이나 문화는 상관없이 무조건 남녀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느냐"고 반문했다.

강의에서 경찰 조직 내 여성 비율이 11.1%라는 자료 화면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통계 출처가 어디인지 질문에 '내가 만든 자료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며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 하는 준비가 전혀 안 된 교수님"이라고 지적했다.

성평등 교육을 받았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간부 A씨가 올린 페이스북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성평등 교육을 받았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간부 A씨가 올린 페이스북 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A씨는 교육장에서 발생한 상황을 '다양한 의견', '논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양한 의견을 이분법적 논리로 왜곡하면 안 된다. 소통하고 토론하는데 논쟁은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교수님이 진행하는 대로 아무 소리 말고 무사히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권 박사는 페이스북 글에서 "관리자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는 이들이 기관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이에 대해 "무슨 권리로 25년 넘게 일한 사람의 조직까지 들먹이며 승진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느냐"고 반박했다. 또 "교수님 스스로 이런 분탕질을 유도한 건 아닌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밝혔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3일 열린 출입기자 정례간담회에서 권 박사의 주장에 대해 “강연한 분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한 수강자들의 행동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안을 확인한 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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