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선장, 추월 경고 안 해…추돌 후에도 무전 횡설수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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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유람선 추돌 사고 당시 인근에서 배를 몰던 졸탄 톨너이 선장이 방송에서 "비이킹 시긴호 선장이 추월 경고 교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헝가리 TV2 캡처]

헝가리 유람선 추돌 사고 당시 인근에서 배를 몰던 졸탄 톨너이 선장이 방송에서 "비이킹 시긴호 선장이 추월 경고 교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헝가리 TV2 캡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들이받은 리버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이 허블레아니호를 추월하면서 무선 교신 의무를 어겼다고 당시 현장 인근에 있던 다른 선박의 선장이 증언했다.

인근 지나던 다른 배 선장 현지 TV2에 증언 #"무선 계속 들었는데 추월 교신 없이 들이받아 # 사고 후 영·독·러시아어 섞어 써 이해 불가" # 바이킹 시긴호 선장, 수상교통규칙 무시 정황 #

 2일(현지시간) 허블레아니호의 침몰 당시 인근에서 다른 선박을 운항했던 졸탄 톨너이 선장은 헝가리 방송 TV2와 인터뷰에서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이 앞서가던 허블레아니호를 추월하려고 나서면서도 허블레아니호 선장에게 무선으로 추월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나는 무선 교신을 계속 듣고 있었는데, 바이킹 시긴호가 아무런 경고 없이 허블레아니호에 다가가더니 들이받아 밑으로 가라앉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무선 교신은 인근 다른 선박들도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다뉴브강 야경을 관람하기 위해 운항하는 선박들이 공통으로 쓰는 무선 통신 채널도 있다고 한다.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탄 허블레아니와 추돌하는 순간 모습. 영상의 2분16초에 해당된다. 바이킹 시긴(뒤쪽 큰 배) 앞에 허블레아니가 있다. [사진 index.hu 캡처]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탄 허블레아니와 추돌하는 순간 모습. 영상의 2분16초에 해당된다. 바이킹 시긴(뒤쪽 큰 배) 앞에 허블레아니가 있다. [사진 index.hu 캡처]

 톨너이 선장은 또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은 앞서 가는 배를 추돌한 뒤에야 무선 통신에 들어왔는데, 그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없었다"며 “영어와 독일어, 러시아어를 한 문장에 섞어 쓰며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헝가리 선박의 안내를 듣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바이킹 시긴호 선장의 이 같은 행동 때문에 추돌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 물에 빠진 한국인 승객 등에 대한 구조가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바이킹 시긴호가 무선 교신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미 현지 다른 언론들이 보도했지만 현장에 있던 선장의 증언까지 나온 것이다. 현지 매체 오리고(ORIGO)는 허블레아니호가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점이 바이킹 시긴호 유리 C(64) 선장이 구속된 주요 사유가 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뒤쪽 큰 배)이 한국인 관광객이 탄 허블레아니와 추돌하는 모습. 영상 화면의 오른쪽으로 허블레아니가 잠기고 있다. 영상의 2분16초에 해당된다. [index.hu 유튜브 일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뒤쪽 큰 배)이 한국인 관광객이 탄 허블레아니와 추돌하는 모습. 영상 화면의 오른쪽으로 허블레아니가 잠기고 있다. 영상의 2분16초에 해당된다. [index.hu 유튜브 일부]

 오리고에 따르면 부다페스트 해당 수역 교통신호 체계상 뒤따르는 선박은 앞서가고 있거나 나란히 가는 선박을 추월하고 싶으면 반드시 무선으로 교신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킹 시긴호의 전자항해시스템과 조타실에 기록된 자료에 그런 교신을 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최근 유람선협회가 공개한 영상에는 바이킹 시긴호에 이어 비슷한 규모의 리버 크루즈선이 침몰 사고가 나 한국인 승객 등이 물에 빠져 있는 지역을 지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만약 바이킹 시긴호 선장이 사고 후 무선 교전을 통해 제대로 추돌 상황을 전파했다면 뒤따르는 선박이 속도를 줄이거나 항로를 다소 틀면서 구조 활동을 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촛불과 꽃 등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촛불과 꽃 등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톨너이 선장의 증언대로 여러 외국어를 섞어 쓰며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한데다 후진 후 다시 전진해 계속 운항하는 태도를 보였다. 허블레아니호는 7초 만에 침몰했는데, 최초 신고는 10분 후 접수됐다. 사고 당시 현장인 머르기트 다리에 도착한 헝가리 경찰도 언제 사고가 났는 지를 알지 못했다고 TV2는 전했다.

 바이킹 시긴호 선장의 이 같은 과실 여부는 헝가리 당국 역시 항로기록 등을 모두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부다페스트=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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