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수박 9900원 vs 1만8000원, 그 뒤엔 도매법인 유통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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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상한 농수산물 유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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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롯데마트 서울역점. 7㎏인 수박 한 통이 1만1900원에 팔린다. 제휴카드로 결제하면 9900원이다. 이마트 왕십리점은 1만3800원이다. 같은 날 서울 송파구 소재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선 1만7000~1만8000원(소매)에 팔린다. 가격표가 없고 흥정으로 정한다.

“농민들 안정적 판로 보장” 취지 #가락시장 도매 경매 법으로 의무화 #법인 5곳 한해 수수료 1600억대 #대형마트는 산지 직거래 값 낮춰

가락시장은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공영 도매시장이다. 그런데 가격이 더 비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혹시 이날만 그럴 수도 있어 한 달치를 비교했다. 지난달 수박 값이 가장 비싼 시점은 2주차(5월 6~12일)였는데, 가락시장은 7㎏ 한 통에 2만400원(㎏당 2914원), A마트(익명 요구)는 8㎏ 한 통에 1만6800원(㎏당 2100원)이었다. 가장 저렴했던 5주차(5월 27일~6월 2일)에 가락시장은 1만7700원(7㎏), A마트에선 1만3800원(8㎏)이었다.

“생산자·상인·소비자 모두에게 손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운영하는 가락시장은 전국 33개 농산물 도매시장 중 가장 크다. 전체 거래량의 40%를 소화한다. 한 해 3조~4조원어치 농산물이 유통된다. 가락시장 가격은 전국 농산품 도매 거래가의 기준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소비자들은 가락시장 제품이 전국에서 가장 싸고 우수하다고 믿는다. 지난달 31일 시장에서 과일을 고르던 김영순(62·경기도 성남시)씨는 “가락시장에 전국 농산물이 모이고, 마트나 재래시장도 여기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걸로 알고 있다”며 “가장 큰 도매시장이니 당연히 가장 싼 것으로 알고 김장 배추나 과일을 사러 일부러 가는데 지금껏 헛수고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도매법인이 장악한 이상한 유통구조가 이런 문제를 야기한다고 설명한다. 김경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은 “도매시장의 농산물 유통 단계가 복잡하고 수수료 등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해 갈수록 농민과 소비자가 외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르면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 도매시장에서 상품을 거래하려면 반드시 ‘도매법인’의 경매를 거쳐야 한다.

85년 가락시장이 생길 때부터 그랬다. 도매상인도 경매에서 낙찰받아야 한다. 가락시장에는 5개의 도매법인이 장악하고 있다. 농민과 도매상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일부에 불과하다.

도매법인은 농산품을 경매하고 4~5%를 위탁수수료로 받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가락시장의 청과 도매법인 5곳은 위탁수수료로 1686억원을 벌어들였다. 동화청과가 387억원으로 가장 많고, 중앙청과 365억원, 서울청과 357억원 등이다. 지난해 이들의 영업이익률은 17.9%에 달한다. 경매에서 도매상인이 낙찰받아 마진(약 10%)을 붙여 트럭상인·소매점주·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농민-도매법인-도매상인-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다. 단계마다 위탁수수료·배송료·마진 등이 추가돼 15% 안팎의 유통 비용이 발생한다.

도매법인은 농민의 안정적 판로를 보장하기 위해 생겼다. 하지만 유통 변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독점권을 행사했다.

유통단계가 복잡해지면서 가격이 오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형마트와 달리 산지에서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상품만 취급한다. 이신우 한국농산물중도매인연합회 사무총장은 “농민들이 이미 산지에서 가격을 정한 물건도 경매에 부쳐 정가를 올린다”며 “농민은 경매로 물건값이 올라도 위탁수수료를 떼이니 제값을 받지 못하고, 도매상인은 높은 가격에 낙찰받고, 결국 소비자 가격이 올라간다. 생산자·상인·소비자 모두 손해”라고 설명했다.

도매법인 측 “수수료는 경쟁력 대가”

청과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에 따라 (회사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수익률은 업계가 비슷한 수준”이라며 “오랜 노하우와 경쟁력에 따른 대가”라고 말했다. 다른 도매법인 관계자는 “무게만을 기준으로 판매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면서 “산지와 거리, 신선도, 당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도매법인이 거래액의 4~5%를 수수료로 받는데, 이게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대형마트는 산지에서 농민과 직거래하거나 영농조합·농협에서 제품을 받는다. 때로는 계약재배한다. 농가-영농조합·농협-마트-소비자 4단계 또는 농민-마트-소비자 3단계로 단순하다. 도형래 롯데마트 채소팀 상품기획자(MD)는 “산지에서는 수집 경쟁, 마트에서는 가격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 단계를 줄이고 마진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도매법인은 법률로 보장하기 때문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손댈 수 없다. 대신 농민과 도매상을 연결하는 ‘시장 도매인’ 제도를 도입해 도매법인과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신장식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기획팀장은 “이미 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시장 도매인 위주로 유통 구조를 개편했다”며 “우리도 유통 상인들의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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