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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국가채무 40%' 나랏빚 논쟁…"국민 합의 기준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난 16일 오후 충남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6일 오후 충남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적정한 나랏빚 기준에 대한 논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 건전성 관리의 마지노선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제시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근거를 따져 묻는 모습이 연출됐다. 경기부양을 위해 나라 곳간을 풀자는 청와대와 오랫동안 곳간을 지켜온 재정 당국 간의 '신경전'은 정치권·학계로 번져 '나랏빚 논쟁'으로 이어졌다.

'40%룰'은 심리적 저항선…명확한 기준 없어 

한국에는 정부가 준수해야 할 적정 나랏빚 기준은 없다. 홍 부총리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거론한 것은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저항선'을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홍 부총리 제시 기준은) 10여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이 30%대로 유지되다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게 됐을 때의 국민 정서적 거부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정 당국이 법·규정을 통해 마련한 기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정학자들도 국가채무비율 적정성에 관한 연구는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인구 추계부터 경기 변동, 산업 구조 변화, 남북통일 비용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보니 이를 계산해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 당국에서도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에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5%룰' 재정건전화법 계류…"유럽보다 엄격" 실효성 의문 

그렇다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기재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로 정하는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했다. 지금도 계류 중이지만, 재정 전문가들도 이 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재정준칙으로 정한 기준 '60%' 보다 더 엄격한 데다, 이 수치를 법에다 명시하게 되면 경제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는 재정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적정한 국가채무비율은 국민 합의를 통해 도출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문가들도 경기 침체 국면에서 재정을 풀어 경기 부양을 하거나, 중장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투자'를 위해 빚을 낼 필요가 있다면 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해 출산율 '0명'대(0.98명)에 진입한 저출산·고령화 추세에서 노인 부양을 위한 연금 고갈 문제,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통일 비용 조달 문제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채무비율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OECD 국가보다 한국 양호?…비(非)기축통화국과 비교해야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미국(105.1%)·영국(117%)·일본(224.2%)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보다 양호하기 때문에 나랏빚을 더 낼 여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돈을 찍어 재정에 활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스위스(42.9%)·노르웨이(42.8%)·호주(42.6%) 등은 한국과 비슷한 국가채무비율 수준을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료 : OECD

자료 : OECD

금융공기업 합한 채무 파악 필요…재정 준칙 국민 합의 이뤄야  

특히 한국은 4대강·지역균형발전·탈원전사업 등 공기업을 통한 국책사업 비중이 크고, 취약 산업 지원 등에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이 동원되고 있지만, 이를 모두 더한 전체 국가채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금융 공기업을 제외한 비금융 공기업 채무까지만 합산한 국가채무 통계만 발표하고 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적자를 국가가 보전해야 하는 금융 공기업 채무 등 '숨은 빚'까지 모두 합산한 정확한 국가채무 규모와 장기 재정전망 등을 바탕으로 닥친 경제 현안을 해결하면서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기준을 국민 합의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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