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하는 화웨이, 공격하는 트럼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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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01면

[SPECIAL REPORT] 5G 세상 주도권은 누가

미국 상무부가 16일(현지시간) 중국 통신장비제조사 화웨이 및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Entity List)’에 올렸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명단에 오른 회사가 미국 기술이나 제품을 거래하려면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완전한 거래 금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난해 ZTE 제재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사실상의 (화웨이) 거부 정책”이라고 보도했다.

5G 주도권 늘려나가자 위기감 #68개 계열사 거래제한 명단에 올려 #영국·프랑스 등 EU는 협조 시큰둥 #삼성·LG는 위기이자 기회

상무부의 조치는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따른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의 화웨이 다스리기는 중국의 굴기를 멈출 ‘핵 옵션’(Nuclear Option)”이라고 평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서는 것은 화웨이가 중국 제조업 굴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민해방군 소속 정보기술(IT) 연구소에서 장교로 근무하던 런정페이(任正非·75) 회장이 1987년 설립한 화웨이는 지난해 3분기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의 28%를 점유해 1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애플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5G의 도입과 맞물리면서 화웨이가 시장 구도를 뒤흔들 잠재력은 더 크다. 5G 산업 규모는 2034년 5000억 달러(6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5일 세계 최초의 상용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한 달여 만에 가입자 수가 40여만 명을 넘어섰다. 신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통신 시장은 지각변동을 겪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의 데이비드 커 수석연구원은 “2G 시절 휴대전화 3강 가운데 삼성전자를 제외한 미국 모토로라와 핀란드 노키아는 스마트폰 기반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밀려났다”며 “5G 시대에는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업체들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특허 분석업체인 IP리틱스는 올 1분기 기준으로 5G 통신의 표준필수특허(SEP) 출원 건수에서 화웨이가 15%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5위인 ZTE(11%) 등을 포함하면 중국이 34%다. 한국은 삼성과 LG가 12%씩을 차지해 국가별 순위에서 2위다. 화웨이의 무선 마케팅 총괄책임자인 피터 저우는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600달러(68만원)짜리 5G 폰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갤럭시S10 5G(미국 출시가 1300달러), LG V50씽큐(1152달러)의 절반 수준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선점을 노리겠다는 의도다.

비상장기업인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의 자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지분 내역이 알려져있지 않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화웨이가 인민해방군 등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영국을 비롯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자사 장비에 백도어(비밀 장치)를 심어 중국 정부에 정보를 빼돌린다고 주장한다. 화웨이 견제를 통해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주도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미국 MIT 교수는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가 일자리 창출과 산업 경쟁력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화웨이 장비 도입을 허용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연합 수뇌부들도 화웨이 장비 사용금지에 부정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 매출 1070억 달러(127조원) 가운데 미국 비중은 0.2%에 불과하다.

미국의 반(反)화웨이 정책은 한국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우선 세계 최대 규모인 북미 휴대전화 시장을 지킬 수 있다. 또 통신장비 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4대 미래성장산업의 하나로 5G를 선정한 삼성은 칩셋·단말·장비 등 전 분야에 25조원을 투자해 내년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다. 반면 반도체·부품 등의 대중국 수출에는 악재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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