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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바깥은 무역전쟁 중, 대통령은 “우리 경제 성공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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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중소기업 행사에 참석해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통계와 현장의 온도 차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2년 연속 중소기업 수출이 1000억 달러를 넘었다”는 등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격려성 발언이라고는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의 부담을 경제 최전선에서 떠안아야 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얼마나 와 닿았을지 의문이다.

대외 악재 덮치는데 소득주도 고집 #기업 투자와 고용 늘릴 쇄신책 필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대내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오불관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 대담에서도 긍정적 수치를 골라 인용하며 정책 기조를 바꿀 뜻이 없음을 밝혔다. 각료와 참모들에게 가시적 성과를 내달라고 채근했지만, 잘못된 방향타에 의존해서야 목표점에 제대로 도달할지 걱정이다.

당장 미·중 무역 전쟁 수위가 높아지는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중국은 다음 달 1일부터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5~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10일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올린 데 대한 맞대응이다. 다음 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막판 타결을 시도한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후 협상’을 언급하는 등 장기화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무역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경제 강국들이다. 양국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6%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양국이 서로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매기면 첫해 양국 교역 규모가 25~30%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미·중 교역감소의 직·간접적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한국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한국의 총수출이 연간 0.14%(8억7000만 달러)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국 갈등에 따른 투자 지연과 금융 불안 등의 간접 영향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여서 실제 영향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걱정은 경제성장률이나 수출·투자·고용 등 거시 경제지표들이 두루 좋지 않은 가운데 이런 일이 덮치고 있다는 점이다. 2년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계속되며 경제를 책임질 기업들의 의욕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버스 파업에서 보듯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로 같은 정책들은 수혜자인 근로자로부터도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급격한 임금 인상 등 기업 옥죄기가 계속되며 지난해 한국을 빠져나간 기업은 3540개에 달했다.

반면 외국인의 한국 직접 투자(FDI)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넉 달 새 60원 이상 가파르게 오른 환율도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 저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무역전쟁 자체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더라도 유사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온전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이 비상하면 대책도 비상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도그마에 집착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투자와 고용을 늘릴 정책과 분위기 쇄신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