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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중반 겨냥 "내 사람"기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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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의 7·19전격 개각은 주요 현안에 대한 인책과 집권 중반을 맞아 「모양」 보다는 일하는 팀웍 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익환 목사·임수경양·서경원 의원 사건 처리와 관련, 안기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하는 소리는 이미 정부 내에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어 박세직 부장의 퇴진은 시기의 선택이 남았을 뿐 진작 기정 사실화 되다시피 했다.
또 이한동 내무장관 역시 동의대 사건을 비롯, 각종 시국 사건 대처에 단호하지도, 조직적이지도 못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최근 민생치안에 대한 원망이 겹쳐 사임이 예견되어 왔다.
이밖에 박승 건설 장관은 판단 착오로 초기 주택 정책 수립에 혼선을 가져와 건설장관이 오히려 아파트·부동산투기를 재촉했다는 비난을 들였고 근래 주택 2백만호 건설,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 등 6공의 거대한 중점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학자 출신으론 너무 나약하지, 않느냐는 지척이 있었다.
장영철 노동·문대준 보사 장관은 각기 노동 관계법·의료보험 관계법 처리에 무정견하게 대처함으로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는 부담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볼 때 박철언씨 기용을 위해 물러난 정종석 정무 제1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책사임이 예상되어 왔던 터여서 이외의 퇴진은 한 명도 없다.
때문에 이번 개각은 물러나는 장관의 퇴임 이유보다는 새 각료의 임명 기준과 거기에 나타난 노 대통령의 통치구상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노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국정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민주화과정의 전환기적 모습들을 불식하려는 의지를 보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지난 1년 반이 노 대통령에게 권위주의적 전임 대통령과 다른 부드러운 이미지를 심는 기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을 할 때가 왔다는 인식의 전환을 듯 하다.
「물 태우」란 말을 들으며 민주화 과정의 부작용을 무던히도 참아왔지만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는 얘기이며 모름지기 제대로 일을 하려면 이것저것 살피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내사람들을 본격 기용해 욕과 명예를 함께 걸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7개의 자리 중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서동권 안기부장· 권령우 건설·박철언 정무장관이다. 이들 3명은 TK 사단의 핵심이자 노 대통령의 직계 인맥이다. 김태호 내무 (경남) 이우재 체신(서울)최영철 노동(전남) 김종인 보사 (전북)등 일견 지역 안배가 고려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TK의 중용은 여느 개각 때 보다 비중이 크다.
사실 3TK가 맡을 책임은 막중하다. 서 안기부장은 노 대통령의 처남인 김복동씨와 경북고 동기이고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오랜 친분과 충성심이 확고하다. 문 목사 서 의원 사건 때 보인 안기부와 안기부장의 태도에 가장 불만이었던 사람이 바로 노 대통령 자신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앞으로 안기부의 역할은 훨씬 강화되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짙게 나타날 것으로 짐작된다.
권령각 건설은 노 대통령의 숨겨논 빅 카드. 권 건설은 84년 부임 당시 정부 투자 기관 중 경영실적 24위이던 주공을 87년에 1위로 끌어올린 실적이 있고 청렴·추진력을 두루 갖춰 6공 복지 정책과 부동산 정책의 사활이 걸린 주택 2백만호 건설, 신도시 건설을 그에게 맡긴 것으로 보인다.
또 박철언 정무제1장관은 누구나 다 아는 노 대퉁령의 측근이자 심복. 그의 활동 영역과 업무추진 스타일 때문에 정부·여당 내에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했고 잡음을 일으켜 대통령에게 부담을 준적도 있지만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임이 떨어졌다는 조짐은 별로 없다.
따라서 박씨를 대통령 정책보좌관에서 정무 장관으로 보내는 것은 결코 「물 먹이는」인사는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온실을 벗어나 자생력을 키워보라는 배려일 것이라는 해석이 더 유력하다. 다만 그가 대통령 주변의 참모로 있을 때 대통령이 받은 비난을 없애려는 의도를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가 정무장관으로 나가 자생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재목으로 자랄지, 아니면 더 큰 구설수의 와중에 몰릴지 관심사다. 그는 분명히 북방 정책을 포함해 각종 국정·대야 관계·당정관계에서 지금보다 더 공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 노력할 것이다. 김태호 내무장관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정당 사무차장으로서 노 대통령의 조직과 자금을 관리한 인연이 있다.
정순덕 재무 위원장과 경합했으나 대안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노 대통령은 내무장관은 국회의원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어 처음부터 당외 인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최영철 노동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능력평가를 받아 노사 분규 해결이라는 가장 어려운 임무가 맡겨졌고, 김종인 보사는 대통령 취임 준비위 멥버로 노 대통령 산하의 몇몇 「운명적인」인맥 중 한 명인데다 지역안배(전북) 덕도 봤다.
이우재 체신 장관은 전문가 우대 케이스. 이렇게 볼 때 노 대통령이 이번 개각에서 노린 것은「인책」「전격」「체제 강화」「일하는 팀 구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의도에도 불구, 인재난· 새인물 부재 등으로 변화와 책임 있는 행정을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치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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