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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경제성장 과실 덜 받는다며 소주성 밀어붙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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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박종규, 박정수, 주상영(왼쪽부터).

박종규, 박정수, 주상영(왼쪽부터).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의 전제가 된 ‘임금 없는 성장’ 담론이 오류에 기초해 있다는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지적이 일자, 학현학파 등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은 ‘노동소득분배율(전체 국민소득 중 노동소득의 비중)’ 지표가 핵심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심포지엄에서 보여준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1975년  81%에서 2017년 57.7%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불붙고 있는 ‘소주성 토대 논쟁’이 노동소득 분배 문제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중앙일보 5월 2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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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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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을 주축으로 개발연대를 주도한 ‘서강학파’와 분배경제학을 가르친 학현 변형윤 교수를 따르는 서울대 출신 진보 경제학자들인 ‘학현학파’ 간의 소주성 공방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소주성 논쟁, 노동소득분배 문제로 #진보쪽 학현학파 “노동자 몫 감소” #보수쪽 서강학파 “자영업자 포함 탓”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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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없는 성장’과 함께 ‘분배 없는 성장’은 소주성 정책의 핵심 전제가 된 담론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 중 노동자 분배 몫이 줄었다는 이 주장을 증명하는 지표로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활용된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문재인 정부 경제참모들은 이를 토대로 정부가 개입해 임금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박정수 교수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소득 중 노동자 배분 몫이 줄었다고 설명하는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지표 측정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측정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학계 연구에 참고할 순 있지만, 정부 분배 정책에 곧장 활용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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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공식 노동소득분배율을 임금 비중만을 계산한다. 이 지표는 2000년 57.8%에서 2017년 63.0%로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주상영 교수가 보여준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여기에다 자영업자가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나 전부를 노동소득으로 간주해 더한 뒤, 전체 국민소득에서의 노동소득 비중을 다시 계산한 값이다. 보정한 조정 지표는 하락하는 모습을 띤다.

박 교수는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이 줄어든 이유는 노동자 임금 비중이 줄어든 탓이 아니라 자영업자 이익 비중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이 지표 하락을 교정하려고 인위적으로 임금을 높이는 것은 오해에 기반을 둔 정책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민소득 중 자영업 부문 이익 비중은 2000년 22.4%에서 2017년 10.4%로 줄었다.

학계 일각에서 자영업자 이익을 노동소득에 반영한 조정 노동소득분배율 지표를 거론하는 이유는 ‘사장이 곧 노동자’인 자영업자가 많다는 가정에서다. 이런 현상은 고용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일수록 두드러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통계청 자영업현황분석(2016년)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국내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393만명이지만,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도 86만명으로 적지 않다. 또 자영업 부문에서 임금을 받는 고용원도 336만명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이익은 노동소득의 성격과도 차이가 있다. 노동자 임금은 일종의 ‘채권’으로 사업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의 대가로 지급 받는 돈이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소득은 사업 성공 여부에 따라 책정된다. 망하면 받을 수 없고, 흥하면 막대한 소득을 남길 수 있는 전형적인 ‘사업소득’이란 의미다.

박 교수는 “‘조정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은 임금 비중이 아니라 자영업 이익 감소에 원인이 있다”며 “최저임금 등을 올린 현 정부 임금 정책(소주성)은 역설적으로 이 지표 하락의 원인이 된 자영업 부문엔 압박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표 하락과 상관없는 기업에도 이미 오르고 있는 인건비 부담(기업 부가가치 중 인건비 비중 2000년 47.6%→2017년 54.3%)을 더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진보 성향 경제학계에서도 “실질 임금상승률이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증가율보다 낮았다는 (박종규·장하성·홍장표 등의) 기존 문헌 주장은 ‘해석상의 오류’에서 출발했다”는 박 교수 지적을 일부 수용했다. 주상영 교수는 10일 심포지엄에서 “실질 GDP 성장률과 실질 임금을 비교한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의 연구(2013년)는 미시·거시 데이터를 혼용해 서로 다른 것을 비교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주 교수는 “박정수 교수 논문에도 취업자 1인당 GDP는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임금 증가율을 계산할 때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상용근로자를 대상으로 했다”며 “모든 취업자의 생산성과 5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만 비교하는 것은 오류”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5인 이상 상용근로자 임금과 함께 전수조사 자료가 있는 2008년부터는 1인 이상 상용근로자 임금도 비교했지만,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요지는 실질 경제성장률과 실질 임금 증가율을 곧장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고, 두 지표 간 괴리를 성급하게 소득 배분 문제로 해석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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