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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채용으로 본 현대차의 혁신… 새 사업, 새 기술 확보 위한 인력에 집중

중앙일보

입력

정기 공개채용에서 상시채용으로 전환… ‘직무 중심 채용’이 가장 큰 특징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 사진: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 사진:연합뉴스

 대규모 정기 공개채용을 없앤 현대자동차그룹이 상시채용 제도로 전략지원과 연구개발 등에서 적극적인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존의 사업영역을 강화하기보다 신규 사업과 기술을 확보하는 데 인력을 집중해 불확실한 미래 자동차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해 적극 나선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부터 대규모 정기 공개채용 제도를 폐지하고 ‘직무별 상시채용’ 제도로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현대차 채용홈페이지에는 올해 들어 4월 둘째주까지 총 148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기아차가 별도로 29건의 채용공고를 올리고 전형을 진행 중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약 100일 동안 현대·기아차에서만 177개 분야의 채용이 진행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상시채용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혁신의 일환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인 법, 상시채용으로의 전환은 정의선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의 전권을 잡은 후 실시하고 있는 체질 개선의 큰 축을 담당한다. 이 같은 상시채용의 도입은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현대차그룹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이 실시하는 상시채용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직무 중심 채용’이라는 점이다. 올 들어 지금까지 올라온 148건의 채용공고는 모두 상세한 직무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의 채용을 보면 어떤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가려고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00일 동안 148개 분야 채용 진행

현대차가 올 들어 공고한 채용 148건을 살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전략지원’ 분야다. 약 30%인 45건의 공고가 전략지원 부문으로 구분된다. 이는 대대적인 경영전략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략지원 분야의 공고들은 대부분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부 직무를 살펴보면 ‘사내스타트업 육성’이나 ‘제로원 운영’을 위한 인재를 선발하는 등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을 위한 인력을 확보하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뿐 아니다. 현대차는 재료 분야의 신기술 스카우팅과 미국과 중국, 유럽의 신사업 개발을 위한 담당자도 뽑았다. 이는 정의선호가 주력하고 있는 글로벌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현대차는 최근 유럽에 크래들 베를린을 설립하며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7년 11월 크래들 실리콘밸리(미국), 지난해 10월 크래들 텔아비브(이스라엘)를 연 데 이어 세 번째 크래들 센터다. 크래들 베이징(중국)이 올해 오픈하면 서울의 오픈이노베이션 거점인 제로원과 함께 현대차가 구상하고 있는 글로벌 5대 오픈이노베이션 거점이 완성된다.

또 자동차 공유시대에 대응해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현대차는 ‘임대시장 전략 및 상품기획’을 위한 인재를 선발해 모빌리티 서비스와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채용한 ‘모빌리티·MaaS UX 컨셉트 개발’ 등의 업무를 위한 인재는 글로벌 모빌리티 서비스의 IT 기반 신사업 전략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너럴모터스(GM)·폴크스바겐·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모빌리티 서비스에 집중하는 가운데 현대차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와 인재 확보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분야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채용도 이어졌다. 현대차는 클라우드 사이버보안과 바이오·뇌공학 분야의 기술을 스카우팅 하기 위한 인재도 채용했다. 미래차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이종 분야의 기술을 자동차에 접합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비해 미래차 시장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다양한 분야의 적극적인 인재 확보로 스마트 모빌리티 시장은 물론 새로운 이종 분야를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고 말했다.

전략지원에 이어 채용이 집중된 분야는 연구개발(R&D)이다. R&D로 분류된 채용이 26건이며 R&D 업무를 수행하는 전략기술 분야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각각 5건의 채용이 실시됐다. 전체 채용공고의 24.1% 수준이다. R&D 채용은 현대차가 기술력에서 최고 우위를 지니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차’에 집중됐다. 특히 ▶MEA(막전극접합체)설계 ▶수소시스템 설계 ▶연료전지 셀 스택설계 ▶연료전지 시스템 설계 ▶연료 전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등 수소연료전지차의 채용공고는 마감일이 없이 연중 상시모집 체제다.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는 모두 흡수하겠다는 포석이 담긴 셈이다.

상시채용 체제 이후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현대차의 기업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점도 예측할 수 있다. ‘범용인재’로 선발된 공채 출신들이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며 고위 임원까지 오르는 시대는 끝날 것이라는 얘기다. 4월 둘째주까지 올라온 148건의 채용공고 중 신입 채용은 63건, 경력직 채용은 72건이었다. 나머지 13건은 계약직 혹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이다. 채용공고 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 42.2%만이 신입 채용인 셈이다. 물론 채용공고마다 선발하는 인원 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채용공고의 숫자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신입 채용이 줄었다고 볼 수는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채용 인원 규모와 신입·경력 비율은 회사의 경영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채용 방식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며 “특히 신입 채용 공고는 한 공고당 여러 명을 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고의 수만 가지고 선발 인원을 예단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말했다.

주요 분야 채용은 경력직에 무게

채용공고를 분석해봤을 때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신입과 경력 선발의 직종별 차이다. 올해 현대차의 신입 채용공고 63건 중 절반에 달하는 31건은 아산, 울산, 전주 등 공장운영과 경영지원, 품질관리 등의 직무다. R&D 분야와 전략기술 분야의 신입 채용공고는 각각 7건, 5건에 그쳤으며 전략지원 분야는 4건뿐이었다. 경력 채용의 경우 공장관리나 경영지원 등의 분야는 전무했고 기술 개발 및 신사업 발굴에 대부분의 일자리 포커스가 맞춰졌다.

경력채용 공고 72건 중 36건이 전략지원 분야로 대부분 신사업 발굴을 위한 채용이다. R&D 분야의 공고도 19건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수소차 핵심 분야의 연중 상시채용이 경력인재만을 대상으로 한다. 현대차그룹의 공격적인 미래차 전략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채용 기조가 이어질 경우 회사의 미래 방향키를 쥘 인물은 경력직 출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채용방식 변화는 바뀌는 현대차의 사업방향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고 평가받던 기업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재계 전반에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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