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국가에 먹을 게 뭐 있다고? 차이나머니가 파고드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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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산악국가 키르기스스탄. 국토의 92%가 산지로 평균 해발고도가 2750m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나라다.

[사진 SCMP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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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맥이 국토의 중앙부를 관통하고 지나가 남북으로 나눈다. 동부의 7000m가 넘는 고봉이 중국과 국경을 이룬다. 이런 국토 환경으로 인해 유목과 관광에 대한 산업 의존도가 높다. 이런 나라에 요즘 돈보따리가 풀렸다. 차이나머니다. 일대일로 자금이 이 산악국가까지 들어왔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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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지난달 29일자 보도다. 수도 비슈케크~남부 나린을 잇는 350km 산악도로가 중국 자금으로 지어졌다. 새 도로가 등장하기 전 이 길은 편도 8시간 걸렸지만 이제는 4시간으로 단축됐다. 이 도로 외에도 수도 비슈케크의 구도로들이 재포장되는 등 차이나머니가 들어와 각종 인프라가 정비되고 있다.

중앙아 산악국가 키르기스스탄 #일대일로 자금 쏟아지며 개발붐 #대외부채 42%가 차이나머니 #대중의존도 높아 부채늪 우려 #인구75% 이슬람교도인 사회 특성 #신장과 접경한 지정학도 투자동기

문제는 일대일로 자금이 2017년 기준 이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대외부채의 42%에 달한다는 점이다. 오직 중국수출입은행에만 진 부채다. 이 나라 GDP의 24%에 해당하는 돈이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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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자그만치 189배가 뛴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차이나자금을 덥썩 물고 본 이유는 하나다. 이자가 시중 금리의 1/5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중국수출입은행은 연 2%의 금리로 이 돈을 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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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금은 4개의 핵심 인프라 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잇는 육상운수망을 잇는 일대일로 육상 사업 가운데 키르기스스탄 구역의 지선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키르기스스탄에 일대일로 자금이 투입되는 방식은 기존의 다른 지역에서 이뤄졌던 방식과 같다.

중국의 국유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을 중국의 건설사와 인부들이 들어와 건설하는 식이다. 키르기스스탄 노동자들을 거의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개발의 낙수효과를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역 민심은 반중 정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 노동자들이 밀려들면서 사회 문제도 일어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사회의 한족화에 대한 우려가 들끓고 있다. 인구 600만에 지나지 않는 키르기스스탄이기에 중국인들의 진출에 겁먹기 충분한 일이었다. 지난 1월 비슈케크 시정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무허가 체류 중국인의 추방과 중국인들의 키르기스스탄 시민권 확보를 막는 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중국인들이 현지 처녀들과 결혼해 자녀를 낳고 정착하자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자금으로 도시 재정비를 하고 있는 시정부는 설득에 애를 먹고 있다.

교통부장관 자낫 베이세노프는 의회에 출석해 시정부가 도로 정비를 위해 앞으로 5600만 달러를 투자해달라고 중국에 요청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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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키르기스스탄에 자금을 푸는 이유는 뭘까. 

이 나라는 일대일로의 간선이 지나가는 핵심 국가도 아니다. 지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의 투자 배경에 의구심이 더 커진다. 미국의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의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힌트가 있다. 보고서는 키르기스 정부의 타자쿰 프로젝트와 일대일로 사업의 연계 가능성을 제기했다. 타자쿰(Taza Koom)은 2017년 4월 발표한 키르기스공화국의 전자정부 혁신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중국의 화웨이와 차이나텔레콤이 진출했다. 두 기업은 키르기스 정부의 대중감시 역량을 향상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키르기스와 중국은 정보를 공유하고 안보 현안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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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안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과 키르기스 접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안보 사안에 대한 협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슬람 과격 세력과 위구르의 동태를 상호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키르기스가 중국에 진 부채는 제대로 갚을 수 있을까. 

단기간에 급증한 부채를 유목과 관광업에 기댄 나라의 재정이 감당하기는 상식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 나라에 돈을 퍼붓고 있다. 이유는 뭘까. 이 나라 종교 인구 구성에 비밀이 있다. 키르기스는 국민의 75%가 이슬람교도다. 나머지는 러시아정교와 기타 종교로 구성돼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빚의 덫에 빠져 99년간 함반토다항의 운영권을 중국에 위임했다. 키르기스스탄은 돈 못 갚았다고 대신 내줄만한 전략 자산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나라 이슬람 사회에 대한 정보공유는 신장위구르의 통제를 위해 적잖은 정보 자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이슬람 사회자산이 중국의 노림수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장과 연결된 키르기스의 지정학은 이슬람 '스탄'국가들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중국의 화약고인 신장위구르지역과 접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키르기스의 잠재력이 중국의 투자를 불러들이는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표면상 경제 프로젝트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육해상 루트를 정비하고 새로 건설해 강력한 물류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중국 주도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차이나머니에 취약한 나라들이 핵심 자산을 팔아넘기거나 자국 안보의 일각을 중국에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기대감을 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일대일로의 본질이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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