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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공관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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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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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도 맞닥뜨렸다. 멀쩡한 인도 보도블록들이 파헤쳐지고, 수변 산책로엔 여러해살이 대신 며칠 피어있지도 않을 꽃들이 곳곳에 심어졌다. 깨끗해지고 산뜻해지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거냐 생각해보면 유쾌하지 않다. “어떻게든 할당된 예산을 다 사용해야 다음 예산 따내기도 좋다”는 말을 예전부터 들었다. 결국 세금이란 말이다.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할 종합운동장이나 기념관을 지어대는 행태들부터 각종 선심성 정책, 외유성 출장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혈세 새 나가는 소식은 꾸준히 들린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거주하는 공관이 구설에 올랐다. 서울 한남동 2층짜리 단독주택과 주변 시설은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9월부터 석 달 동안 16억원이 넘는 돈으로 리모델링됐다. 외국과의 사법교류 기회가 늘어 삼부 요인에 걸맞도록 연회장을 증축해야 한다는 게 큰 이유였다. 이후 그 명목에 걸맞은 국제교류 행사가 있었다는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았다.

이 공관에 서울 강남의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김 대법원장의 자녀 부부 식구가 지난해부터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년이 넘는 기간이다. ‘관사 재테크’에 이은 ‘공관 재테크’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거 비용을 아끼면서 청약 대금을 마련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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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공관뿐 아니라 주요 공관은 국유재산법과 국유재산법 시행령, 그리고 국가재정법에 의해 ‘국유재산’으로 규정돼 있다. 즉, 국민 세금이 들어간 곳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해당 인사와 부양가족만이 거주해야 한다는 단서는 없다.

그럼에도 독립된 일가를 이루고 소득이 있는 자녀의 식구가 그 공관에 거주해 온 이유에 대한 명쾌한 기준이 필요하다. 조용한 해명이 김 대법원장 주위에서 나왔다. "전 대법원장들 중 몇몇도 자녀들과 함께 기거한 적이 있다.” 관행적인 일이었는데 무슨 문제냐는 항변이다.

시계를 2017년 8월 22일로 되돌려본다.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던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자 이날 수행도 없이 서류가방 하나 들고 대법원 청사를 방문했다. 무더운 여름날 관용차도 타지 않고 땀을 흘려가며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소박함이 부각됐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겠다는 의지가 신선했다. 공관 문제에 대한 답변 역시 2017년 그날의 연장선에 있었으면 한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