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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하다 골병 들어도…복지 사각지대서 온갖 궂은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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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호 06면

중국 동포 간병인 12만명

지난 2일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이 환자의 보행 연습을 돕고 있다. [정미리 인턴기자]

지난 2일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이 환자의 보행 연습을 돕고 있다. [정미리 인턴기자]

지난달 17일 오전 3시39분.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병실에서 환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간병인(65)이 곧 환자를 데리고 나왔다. 십 분이 넘도록 휠체어를 끌어주자 환자가 다시 잠에 빠졌다. 하지만 간병인은 잘 수 없다. 언제 환자가 깨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24시간 동행 취재 해보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집에 돌아가 #병원 욕실서 몰래 속옷 등 빨래 #팔 관절, 무릎 연골 상하기 일쑤 #“번 돈 절반은 다시 병원에 갖다줘” #돈 아끼려 컵라면으로 끼니 때워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도 있어 #세금 안 내 4대보험 적용 못 받아 #“사람 취급 안하는 게 가장 서러워”

“잠을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는 것 같슴다.” 간병인은 헤이룽장성에서 온 중국 동포(일명 조선족)다. 눈 밑이 다크서클로 시커멓게 됐다.

옆 병실에서는 간병인이 두 시간마다 보호자용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환자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서다. 그는 4년 전, 하얼빈에서 왔다. 150cm 남짓한 간병인이 육중한 남자 환자의 몸을 뒤집어 기저귀를 채운다. 이 병원에서 만난 16년차 간병인은 “팔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니 관절이 상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번 돈의 절반은 다시 병원에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잠은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

기자는 지난달 12일부터 17일까지 아산병원·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 세 곳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 간병인 8명과 먹고자며 24시간을 동행 취재했다.

16일 오전 10시. 한 병원의 간병인이 검은 봉지를 들고 욕실로 향한다. 몰래 빨래를 하기 위해서다. 세탁 서비스가 간병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집에 돌아가기 때문에 병원 욕실을 쓰지 않으면 빨래를 하기 힘들다. 말릴 장소가 마땅치 않아 속옷은 침대 밑이나 서랍장 안에 숨겨 말린다. 이 사람 역시 중국 동포 간병인이다. 그는 “남자 의사나 환자가 볼까봐 (빨래를) 숨긴다”고 했다.

오후 1시. 중국 동포 간병인들이 뒤늦게 점심을 먹는다. 식사 메뉴는 컵라면이나 장아찌 등이다. 끝이 삭은 두부에 고춧가루를 뿌려 데워먹는 사람도 있었다. 집에 언제 들어갈지 모르니 먹기 간편하고 오래 보관해도 되는 것 위주다. 순천향병원에서 일했다는 한 간병인(58)은 “이렇게 끼니를 떼우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도 봤다”고 말했다.

직원 식당에서 한 끼에 4800원짜리 식사가 있긴 하다. 하지만 기자가 만나본 간병인 중에 식당밥을 먹는 사람은 없었다. 세 끼니 값이면 일당의 10%가 넘는다. 이 병원의 간병인들은 평균 잡아 9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간병인 협회에 매달 8만원씩 회비를 내고 상해 보험비까지 별도로 내면 수중에 남는 돈은 매달 200만원을 조금 넘긴다.

오후 4시. 휴게실 앞에 서있는 간병인을 맞닥뜨렸다. 가족이 문병을 와서 자리를 비켰다고 설명했다. “머쓱하니까”라는 이유로 한 층 위까지 올라왔다.

중국 동포 간병인들의 유일한 전용공간은 계단 한 칸보다 반 뼘쯤 높은 보호자용 침대다. 환자 침상보다 낮은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관절에 무리가 간다. 상계동에 산다는 한 간병인(69)은 “무릎 연골이 터져 파스를 붙이고 다닌다”며 바지를 걷어 올려 보였다.

병원에서 간병인들은 환자를 운동시키고 몸을 씻기거나 체위를 바꾸는 등 꾸준하게 몸을 움직였다. 자는 동안에도 시간에 맞춰 환자들의 몸을 뒤집고 가래를 닦아내느라 하루의 시작도, 끝도 불분명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간병인들은 특수형태 고용 노동자다. 고객을 찾아 직접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주는 수고비를 받기에 간병인은 세금도 내지 않고, 4대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다. 수고비를 못 받거나 일자리를 잃어도 호소할 구석이 마땅치 않다.

인천에 사는 50대 구옥순(가명)씨는 지난해 서울 도봉구의 한 대형 병원에서 남성 보호자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약속 시간을 미루던 보호자는 술에 취한 채 등장했다. 구씨를 보자마자 “지하로 내려가자”고 말했다. 거절하자 손을 올렸다. 소란은 간호사가 경찰을 부르고 나서야 진정됐다. 구씨는 “우리(중국 동포)들은 경찰 불러야 하다는 것도 모르지, 중국하고는 다르니까요” 라며 설명했다. 심천에서 왔다는 한 중국 동포 간병인(57)도 “환자가 하루 종일 잠도 못 자게 해 새벽에 졸았더니 바로 해고해버리는 거예요. 사고도 안 났는데…”라고 한탄했다.

‘간병인협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업체가 있지만 일을 알선해주는 직업소개소에 가깝다. 문제가 생기면 나서주는 곳이 드물다. 간병인들은 “모든 협회가 나쁜 건 아니지만 돈을 떼였을 때 나서주는 협회를 만나는가, 못 만나는가 여부는 운에 달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사정에 더 어두운 중국 동포들은 노조의 도움도 구하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는 “중국 동포 분들을 돕고 싶어도 연락이 없어 실태 파악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사람 살리는 일 한다” 자부심도

가정 간병을 선택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 옌타이에서 온 김인화(57, 가명)씨는 겨울마다 분당에서 호떡 장사를 하면서 요양보호사 공부를 틈틈이 했다. 노력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성추행이었다. 남성 치매 환자들 중 일부는 성적인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있다. 그를 거절하니 김씨가 돌보던 환자는 지팡이로 김씨를 때리려했다. 김씨는 베란다에 숨어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중국 동포 간병인들은 “사람으로도 취급해주지 않는 현실이 가장 서럽다”고 말한다. 구씨는 “말라 비틀어진 송편처럼 못 먹게 망가진 음식을 주는 치졸한 짓을 당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2007년부터 간병일을 한 이모(58)씨도 “우리를 보호자들이 막 대할 때마다 이를 악다물고 참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 동포들은 그림자처럼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중국 동포 간병인들은 자신들에게 잘 대해준 한국인들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인이 다 나쁜 건 아니라요. 사람마다 다르지.” “치매 노인을 돌보는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는 거야. 환자가 낫는 모습이 기뻐서.” 취재 중 만난 한 중국 동포 간병인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거 아니요?”

정미리 인턴기자 jeong.m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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