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압수수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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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적법한 절차를 밟고 압수 수색하러 왔습니다.』
12일 오전7시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 정문 앞. 정장차림의 안기부 수사관들은 매우 정중한 태도로 이종욱 편집부위원장에게 영장사본을 제시했다.
서경원 의원 사건 증거물을 찾기 위해 언론자유의 본산이랄 수 있는 신문사 편집국에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들어가는 유례가 드문 현장이었다.『언론자유 수호 차원에서 거부할 수밖에 없다』 는 이부위원장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전경 7백여 명을 배치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안기부 수사관들은 현관문을 뜯어내고 들어가 편집국내 윤재걸 기자의 사물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언론자유 침해하는 안기부는 물러가라.』 전경버스로 연행되면서 외쳐대는 목청 높은 구호소리도 완강한 공권력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중요한 증거물인 서 의원 방북사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만약 서 의원이 법정에서 잡아떼기라도 하면 공소유지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압수수색 강행에 대한 안기부 측의 이유.
서 의원사건이 국기 (국기)를 흔들 만큼 심각하다는 점에서 「성역 없는 수사를 수긍하는 사람도 많다.
수사관들은 이날 사진과 함께 발견한 윤기자의 취재수첩을 『언론윤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압수 않겠다』며 가져가지 않아 이번 압수수색이 미칠 여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현장을 지켜보던 취재진들 사이에는 『신문사 편집국을 압수 수색하는데는 막강한 힘을 과시하면서 정작 서 의원 입북은 알지도 못했고 여태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무능한 공권력이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아쉬움을 지우지 못하는 표정이 역연 했다.
20여분동안의 압수수색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조용히 지나갔지만 「아직도 사회를 유지하는 힘의 추가 언론자유보다 권력의 합법성에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씁쓰레한 하루였다.<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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