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은, 푸틴에 전통 검 선물하며 "절대적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러시아 방송 RT 유튜브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러시아 방송 RT 유튜브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지각 대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30분가량 기다리게 했다. 김 위원장은 24일부터 회담장인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 와있었다. 김 위원장은 회담이 열린 극동연방대S동에서 약 100m 떨어진 귀빈용 호텔에 묵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상습 지각’으로 유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70여명의 정상을 세워둔 채 30분 동안 기다리게 한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서다.

그런데 25일엔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기다리는 상황이 등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후 1시 35분께(현지시간) 회담 장소에 도착했다. 당초 러시아 언론 등이 도착시간으로 예상했던 오후 1시보다 30여분 늦은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도착했는데 김 위원장을 태운 차량은 그로부터 30분가량 지난 뒤에야 호텔에서 S동으로 이동해 오후 2시 5분께 회담장에 도착했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왔다. 손님인 김 위원장이 먼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 ‘나홀로’ 하루를 보낸 김 위원장이 ‘지각’으로 응수한 게 됐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25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건물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25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건물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회담장소인 S동에 미리 나와 레드카펫에 서서 김 위원장을 맞았다. 인사를 나누는 양 정상의 표정은 밝았다. 푸틴 대통령은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악수를 했다. 인민복 예복인 일명 ‘닫긴옷’ 차림의 김 위원장도 활짝 웃으며 푸틴 대통령의 손을 힘차게 잡고 “맞아주셔서 영광이다”라고 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복 재킷의 뒷 부분이 말려 올라가 있는 장면. [러시아 TV RT 캡쳐]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복 재킷의 뒷 부분이 말려 올라가 있는 장면. [러시아 TV RT 캡쳐]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알려진 신장이 170㎝로 같다. 단 체중이 더 나가는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 견주어 풍채에서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용호 외무상, 이영길 군 총참모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순서로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 수행원들을 소개했다. 김평해·오수용 당 부위원장보다 최선희 제1부상을 먼저 소개했다. 양 정상의 인사가 끝난 후엔 이용호 외무상 등 수행원들은 러시아 측의 안내를 받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만남은 19년 전 푸틴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에서의 첫 정상회담과 비견된다. 푸틴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받은 뒤, 2000년 7월 첫 해외 방문지로 평양을 택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와 그를 환영했고, 푸틴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왼손으로는 팔 부분을 만지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들인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선 공개된 모습으로만 보면 19년 전보다는 경직된 모습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2000년 7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후 첫 해외 방문이었다. [유튜브 캡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2000년 7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집권 후 첫 해외 방문이었다. [유튜브 캡처]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인사를 나눈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단독 정상회담장으로 향했다. S동 곳곳엔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게양돼있었다. 회담장에 앉아 러시아ㆍ북한 일부 취재진에게만 모두발언을 공개한 양 정상의 표정은 다소 굳어있었다. 양 정상 뒤로는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교차로 세워지지 않고, 각 정상 뒤에 각각 국기가 세 기씩 세워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6월과 올해 2월 북ㆍ미 1차·2차 정상회담에선 양측 국기가 교차로 놓였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 초점이 조선반도 문제에 집중돼있는데, 이 문제를 같이 평가하고, 견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조정, 연구해나가는 데 대해서 아주 의미 있는 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남북 대화 발전과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김 위원장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단독회담은 약 1시간 동안 이어졌고, 곧이어 확대회담이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선 "매우 바쁜 속에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고 모스크바에서 수천㎞ 떨어진 여기 와서 훌륭한 대화할 시간을 (중략) 마련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선 단독회담에서)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확대회담 이후 만찬에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나란히 라운드테이블에 착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며 “러ㆍ북 우호를 위해, (중략) 김 위원장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도 “조선(북한)과 러시아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맥으로 잇닿은 친선적 우방”이라며 “친선 관계를 보다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려 세울 것”이라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종이에 미리 준비해온 건배사 원고를 손으로 넘겨가며 읽었다. 양 정상은 만찬장에 입장하면서 전통 검을 선물로 주고 받았는데,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검을 선물하며 "절대적인 힘을 상징한다. 당신을 지지하는 나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갑자기 보좌관에게 동전을 달라고 한 뒤 김 위원장에게 동전을 건네며 "우리 풍습에선 칼을 들 때 '내가 당신에게 악의를 품지 않았다'는 뜻으로 돈을 주게 돼있다"고 말했고, 양 정상은 활짝 웃었다.

만찬 헤드테이블엔 양 정상과 북·러 수행원들이 착석했다. 북한에선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이, 러시아에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 유리 투르트네프 부총리가 자리했다. 푸틴 대통령은 만찬 후 단독으로 크렘린(대통령궁)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만찬 메뉴로는 블라디보스토크 특산인 게를 이용한 샐러드와 러시아 전통식 만두인 펠메니, 러시아식 수프인 보르쉬 등이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TV]

김 위원장은 이날 회담을 앞두고 테라스로 수행원들과 나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묵는 숙소는 귀빈용으로 지었지만 넓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극동연방대 유학생인 이밝음씨는 “학생용 기숙사와 평수가 똑같다고 들었다”며 “학생용 기숙사 1인실은 실평수가 8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시 극동연방대에 다니는 장혜민 씨도 “3인실 정도가 제일 크고 국가 정상이 오면 한 층을 다 내준다”면서도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넓은 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