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헌병대' 납세자보호委, 부당 세무조사 17건 중지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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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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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A지방청은 과거 한 비상장 중소기업의 매출액·비용 신고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사 주주 갑씨도 조사를 받았다. 이후 B세무서는 이 회사 실소유주의 횡령 혐의를 포착하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갑씨는 실소유주에게 이름만 빌려준 '바지 주주'는 아닌지 또 한 번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혐의점은 없었다. 그런데 또 다시 A지방청은 올해 2월 비슷한 내용으로 갑씨를 조사하려 했다. 이에 갑씨는 즉각 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에 조사 중지를 신청했다. 위원회는 이를 '중복 조사'로 판단하고 조사를 중단시켰다.

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2018년 4월~2019년 3월) 적법절차를 위반한 세무조사 17건을 자체 중지 조치했다고 24일 밝혔다. 일선 세무서나 지방국세청 등에서 탈세를 의심할 명백한 자료가 없는 데도 같은 사건을 과잉 조사하지 못하게끔 한 것이다.

납세자보호위는 또 납세자들이 다시 심의해 달라고 요청한 세무조사 사건 125건 중 30건에 대해서도 세무조사 기간을 줄이거나 일부 중복 조사를 시정토록 했다. 나머지 78건은 정상적인 세무조사로 판단하고 시정 불가 판정을 내렸다.

김영순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은 이날 세종본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세무조사를 중지하거나 시정토록 한 사건은 일선 세무서·지방청에서 고쳐지지 않고 올라온 사건들"이라며 "올해에는 세무서의 납세자 권리 보호 기능을 지방청으로 이관해 납세자 고충을 좀 더 깊이 있게 심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납세자보호위는 내부의 '헌병대'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해 4월 1일 신설됐다. 민간 위원 15명과 납세자보호관 1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국세청의 과잉 조사를 막고,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기존에도 전국 지방청과 세무서 내부에는 납세자보호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본청 산하 위원회가 없다 보니, 납세자들은 세무서장이나 지방국세청장의 결정에 대해 권리 구제를 요청할 수 없었다. 이번 위원회 설립으로 세무조사 결과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납세자는 세무서장·지방청장의 조사 결과를 통지받은 이후에도 7일 안에 국세청장에게 직접 결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재철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은 "권익 보호 과정에서 과잉 조사를 한 것으로 밝혀진 공무원은 규정에 따라 징계하게 된다"며 "경미한 경우에는 조사 업무를 개선하거나 내부 교육에 활용토록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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