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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와 시녀·까계정, 그들이 빚어낸 인스타장터 요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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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임블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매해 온 호박즙에 곰팡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인플루언서가 중심 유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과문을 냈지만 소비자 불만은 임블리의 다른 제품으로 확산 중이다. 인스타 판매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내걸고 파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통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임블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매해 온 호박즙에 곰팡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인플루언서가 중심 유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과문을 냈지만 소비자 불만은 임블리의 다른 제품으로 확산 중이다. 인스타 판매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내걸고 파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통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팔이(판매자), 셀러(seller), 셀마켓(Cell market) 사업자, 인쇼(인스타그램 쇼핑) 사업자…

‘곰팡이 호박즙’ 계기로 본 실태 #제품 입소문 내다 판매자 된 팔이 #사생활 노출 마케팅으로 친근감 #연매출 1700억 임블리 성공사례 #마약혐의 황하나도 판매자 활동 #일부 팔로워는 추종세력 ‘시녀’로 #물품 불만에 안티 ‘까계정’ 되기도

호박즙에서 검출된 곰팡이로 위기를 맞은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와 같은 형태의 사업자를 부르는 용어는 다양하다. 이중 다소 비하적으로 들리는 ‘팔이’가 널리 쓰인다. 요즘 이 동네가 소란스럽다. 임블리는 호박즙 곰팡이 사태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다른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임블리가, 팔이가 도대체 무엇인데 이 난리일까. 왜 문제 제품 환불로 매듭지어지지 않을까.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임블. [인스타그램 캡쳐]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임블. [인스타그램 캡쳐]

◆팔이가 인스타그램으로 간 까닭은=논란의 중심인 임블리는 인쇼 업계의 대표적 성공신화이자, 팔이 꿈나무의 롤 모델이다. 임블리는 배우 출신 임지현(32) 부건에프엔씨 상무의 애칭이다. 2013년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해 단기간에 연매출 1700억원(지난해 기준)의 패션·뷰티·생활 브랜드를 키웠다. 당시 남자친구(현재 남편인 박준성 부건에프엔씨 대표)의 쇼핑몰에서 피팅모델로 활약하다 1인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다. 임블리는 인스타 마케팅 덕을 톡톡히 봤다. 그의 사랑과 결혼, 임신·출산·성공·도전은 모두 인스타그램을 통해 중계됐다.

이를 통해 축적된 팬심을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인스타 장터의 동력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이 확보되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모바일 쇼핑 거래의 한 조각만 차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네이버처럼 큰 돈 들이지 않고 인스타에서 ‘중박’만 터뜨려도 괜찮은 저비용, 고효율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강하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대신 피도 눈물도 없는 레드오션이다. 물건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대부분 동대문)이라 품질이나 제품 차별화는 쉽지 않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유명 브랜드 카피 제품, 묻지마 건강식품이 난무한다. 돈만 되면 무엇이든 가져다 팔다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치유. [인스타그램 캡쳐]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치유. [인스타그램 캡쳐]

◆팔이, 그들은 누구인가=“센스 있는 이웃집 언니·오빠가 먼저 써 본 제품.” 이것만큼 솔깃한 마케팅은 없다. 팔이의 시작은 어김없이 ‘보통사람’이다. 대부분 제품 정보를 알려달라는 댓글이 쇄도해 공구(공동구매)를 진행했고 공구와 매입을 반복하다 판매자가 됐다는 ‘팔이의 서사’를 보유하고 있다.

팔이에게 사생활 공개는 주요 마케팅 수단이 된다. 성장 과정, 가정 환경, 우정, 실패와 성공, 연애와 이별, 육아, 결혼생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생활은 낱낱이 공개된다. 공개된 정보가 사실인지는 무관하게 소비자는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이가 아파서 먹였다는 건강식품, 판매자가 피부 트러블에 직접 써 효과를 봤다는 화장품, 매일 해 먹는 요리 정보를 보다 팬이 된다. 팬 중에는 일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판매자를 믿는 추종자가 된다. 다른 곳에서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이라도 꼭 좋아하는 판매자에게서 산다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와 대리전을 치르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게 ‘시녀’라는 비하적 명칭이 따라붙는 배경이다.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릴랑드보떼. [인스타그램 캡쳐]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릴랑드보떼. [인스타그램 캡쳐]

◆팬이 ‘까’로 변하는 것은 순간=각종 커뮤니티에는 ‘믿고 거르는 팔이 10선’과 같은 제목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명단에 오르는 팔이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사랑받지만, 대부분 같은 이유로 미움 받는다. 청담언니로 불리는 치유(손루미·개인계정 팔로워 16만)는 유쾌한 입담과 부유해 보이는 이미지, 1억원어치의 명품을 한꺼번에 사들여 언박싱(새로 산 물건을 열어보는 행위)하는 이벤트로 영향력 키워왔다. 현재는 자체 제작으로 홍보한 제품이 유명 명품 브랜드나 국내 디자이너의 카피인 게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동안 간간이 밝혀 온 이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도 공격을 받는 이유다. 여기에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와의 친분에 대한 의혹도 문제가 되고 있다.

황씨 역시 인스타그램 비즈니스 계정서 판매자로 활동해왔다. 재벌가 자손이라는 캐릭터로 팔로워 20만명을 확보, 화장품과 레깅스 등 의류를 팔아왔다. 체포 당시 입은 옷도 자신이 판매하던 제품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SNS 쇼핑 및 피해경험

SNS 쇼핑 및 피해경험

2015년부터 판매 활동을 하는 마드모아젤(홍담기·개인계정 팔로워 9만명)은 영수증 발급 회피 의혹을 시작으로 ‘수소수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노화방지에 탁월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마케팅에 이용해 안티를 만들었다. 릴랑 드 보떼(여선주·개인계정 팔로워 12만명)는 각종 건강제품 판매 이후 미흡한 대처, 판매 화장품 부작용, 과도한 마진 등의 논란을 빚었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일부에 대해서 사과문을 올리거나 사과 방송을 한다. 이런 뒤에도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고소, 인스타 계정 댓글 창 닫기 등을 반복하면서 사업은 이어간다.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마드모아젤. [인스타그램 캡쳐]

소비자와 분쟁으로 안티팬을 양산했던 판매자 마드모아젤. [인스타그램 캡쳐]

◆‘까’는 왜 분노하나=‘까계정’은 인스타그램 장터의 취약한 소비자 보호가 만들어낸 문화다. 소비자는 이곳에 집결해 목소리를 높인다. 팔이의 과거 발언, 댓글이 모두 무기다. 막대한 시간을 들여 캡처(이들은 피드를 ‘찐다’고 표현한다)하고 경험담을 모아 압박한다.

임블리 까계정 ‘시발블리임’을 운영하는 A씨(30대 회사원)는 “10년 전 임씨의 따따따(여성 쇼핑몰) 모델 시절부터 팬이었고 임블리가 생기면서 초창기 가입 멤버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A씨는“유명해지면서 어느 순간 가격이 올라가고 불량에 대해 문의를 해도 대응도 제대로 안 해 크게 실망했다”며“특히 직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많았다는 제보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블리의 문제점을 알리는 인스타그램 ‘까계정’. 피해자 제보를 모아 저격의 근거를 제시한다.

임블리의 문제점을 알리는 인스타그램 ‘까계정’. 피해자 제보를 모아 저격의 근거를 제시한다.

판매자 치유를 겨냥한 ‘치유 뉴스2’를 운영하는 B씨(30대 자영업자)는 “인스타 장사꾼들이 옷 팔다가 명란젓을 팔질 않나, 줏대 없이 돈 되는 건 다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한 차례 계정이 정지돼 새로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B씨는 다시 정지될 것에 대비해 ‘치유 뉴스3’를 미리 만들어 뒀다.

취재에 응한 까들은 입을 모아 ‘마치 가족이나 친구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창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교수는 “팔로워들은 인플루언서가 돈을 받는 것을 알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적 신뢰를 기반으로 구매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어떤 때보다 분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병관 광운대 심리학과 교수도 “인스타 셀러는 얼굴을 내세워 마케팅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제품의 하자를 인플루언서의 도덕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분노가 더욱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소셜미디어 쇼핑…이용자 28%가 피해 경험

임블리 호박즙 사태는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유통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이 시장은 확대되고 있어 유사한 사태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가 지난 1일 발표한 전자상거래 이용자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셜미디어 쇼핑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28%가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불·교환을 거부하거나 판매자가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 관련 법 위반 행위 감시한 결과에서도 거래량이 급증한 소셜미디어 마켓 판매자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접수된 법 위반 행위 제보 1713건 중 소셜미디어 마켓 관련 제보가 879건에 달했다. 정당한 사유 없는 교환·환불 거부가 빈번했다.

소셜미디어 마켓에서는 “‘호갱’이 악덕 팔이를 만든다”는 말이 통한다. 판매자는 아무리 친밀하게 느껴져도 어디까지나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다.

조창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교수는 “소비자도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대한 자각을 키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현명한 소비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전영선·최연수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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