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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179㎞ 러시아행 "북한 철도 노후해 가는 데만 24시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24일부터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ㆍ러 정상회담을 위해 회담 예정지인 블라디보스토크로의 출발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직선거리로는 700여㎞로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며 “김 위원장이 전용기인 참매-1호를 탈 경우 당일 출발하겠지만 열차를 이용할 경우 오늘(22일)이나 내일(23일) 평양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나진과 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물리적인 거리와 북한의 열악한 철도 사정을 고려하면 열차 이동시간에만 24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철로가 노후해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라 하더라도 평균 시속 60㎞ 이상을 달리기 힘들다”며 “평양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179㎞를 가는데 열차 이동에만 20시간 안팎이 걸리고, 북한과 러시아의 철도 궤가 달라 대차(바퀴)를 교체하는데 3시간 이상(시간당 6~8량 교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3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3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해외 출국 때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전용기를 이용하고 있지만, 베트남 하노이까지 60시간 이상을 타고 갈 정도로 열차도 애용하고 있다. 땅 위를 달리는 기차가 가장 안전하고, 선대(先代) 지도자들의 뒤를 잇는 모양새를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2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할 때 열차를 이용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사격인 김창선 국무위 부장이 미리 이동해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점검한 것도 이런 열차편 이동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 위원장이 열차를 선택할 경우 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24일 오후부터 거꾸로 계산하면 22일 오후 출발할 경우에만 이동 중간에 북한 지역에서 잠시 쉬거나 현지에 미리 도착해 휴식할 수 있다. 또 23일 출발할 경우 회담 시작 직전 블라디보스토크에 닿게 된다. 이르면 22일 늦어도 23일 오후엔 출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항공기가 편리하지만 열차의 상징성도 담겨있다. 평양에서 북동쪽 국경으로 이동한 뒤, 중국의 훈춘을 경유할 경우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북ㆍ중ㆍ러 3국의 협력을 강조할 수 있다. 또 나진에서 두만강역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바로 이동할 경우엔 대북 제재 속에서도 북ㆍ러 경제협력 의지를 과시할 수 있다. 북한은 나진항 부두를 러시아에 내어주는 등 나진은 북ㆍ러 경협의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하지만 북한이 막판에 비행기 편을 결정할 수도 있어 당국은 주목하고 있다. 양측이 항공기 운항도 준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된 데다, 지난 2월 말 베트남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처럼 러시아의 첫 역인 하산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과 러시아 당국이 회담 일정을 확정하고도 발표하지 않을 정도로 북한은 김 위원장의 동선에 대해선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다”며 “다양한 대안 일정을 준비해 놓고 주변 국가들에 혼선을 주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용수·백민정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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