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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큰 꽃이 시체 썩는 냄새 풍기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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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핀 라플레시아. 이달 초순 말레이시아에서 목격한 라플레시아는 지름이 78㎝라고 했다. 접근을 막아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대신 스마트폰과 크기를 비교했다. 손민호 기자

활짝 핀 라플레시아. 이달 초순 말레이시아에서 목격한 라플레시아는 지름이 78㎝라고 했다. 접근을 막아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대신 스마트폰과 크기를 비교했다. 손민호 기자

라플레시아(Rafflesia). 지구에서 가장 큰 꽃이다. 지름이 최대 88㎝나 된다.

이달 초순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에서 만개한 라플레시아를 목격했다. 한국인 여행자가 활짝 핀 라플레시아를 직접 본 건 행운이었다. 라플레시아의 개화 시점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플레시아는 9∼21개월간 숨어 살다 수풀 바닥에서 꽃을 피우고 7일 안에 죽는다.

라플레시아를 목격한 장소는 보르네오(Borneo)섬 북쪽의 깊은 숲속이었다. 말레이시아 사바(Sabah)주에 속하는 해발 4095m 키나발루(Kinabalu)산의 아랫자락에서였다. 사바주 국립공원 직원을 비롯한 현지 전문가로부터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꽃’ 라플레시아에 관한 신비로운 사실을 들었다.

 만개한 라플레시아는 커다란 솥단지처럼 생겼다. 깊은 구멍이 나 있어 더욱 그러하다. 꽃을 보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만개한 라플레시아는 커다란 솥단지처럼 생겼다. 깊은 구멍이 나 있어 더욱 그러하다. 꽃을 보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꽃 이름이 왜 라플레시아인가. 
“이 꽃을 최초로 발견한, 정확히 말하면 서양에 최초로 알린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1781∼1826)의 이름에서 따왔다. 래플스 경은 싱가포르에서 더 유명하다. 싱가포르 건설의 아버지로 통하는 그는, 영국 정부를 설득해 싱가포르를 개척하게끔 한 주인공이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래플스 호텔’도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가 1818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을 탐험하다 이 거대한 꽃을 발견했다고 한다.”
라플레시아는 어떤 식물인가.
“기생식물이다. 잎도 없고, 줄기도 없고, 뿌리도 없다. 다른 넝쿨식물의 줄기나 뿌리에서 9∼21개월을 기생한다. 그러다 문득 수풀 우거진 땅바닥에서 꽃봉오리를 맺는다. 꽃봉오리를 맺기 전까지 라플레시아를 볼 수 없는 까닭이다. 비유하자면, 라플레시아는 오로지 꽃으로만 존재하는 식물이라 할 수 있다.” 
 라플레시아가 피면 사람의 접근을 막는다. 울타리 밖에서 팔을 뻗어 비교 촬영을 시도했다. 말레이시아 가이드가 손에 든 스마트폰이 왜소해 보인다. 손민호 기자

라플레시아가 피면 사람의 접근을 막는다. 울타리 밖에서 팔을 뻗어 비교 촬영을 시도했다. 말레이시아 가이드가 손에 든 스마트폰이 왜소해 보인다. 손민호 기자

꽃은 오래 피나.  
“꽃봉오리를 맺고서는 한 달쯤 뒤 개화한다. 꽃봉오리는 양배추와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데, 개화한 꽃은 솥단지처럼 둥글고 넓적하다. 꽃은 5∼7일 핀다. 꽃이 지면 시커멓게 변한다.”
꽃이 얼마나 큰가.  
“라플레시아도 종류가 20종 가까이 된다. 가장 큰 ‘라플레시아 아르놀디(Rafflesia Arnoldii)’의 경우 지름이 88㎝까지 된다. 무게는 6㎏까지 나간다. 라플레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큰 꽃이자, 가장 무거운 꽃이다.” 
 활짝 핀 라플레시아를 확대한 사진. 꽃 안쪽에 파리를 비롯한 벌레들이 보인다. 이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긴다. 라플레시아가 이들 벌레를 유인하기 위해 악취를 풍긴다는 게 정설이다. 손민호 기자

활짝 핀 라플레시아를 확대한 사진. 꽃 안쪽에 파리를 비롯한 벌레들이 보인다. 이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긴다. 라플레시아가 이들 벌레를 유인하기 위해 악취를 풍긴다는 게 정설이다. 손민호 기자

꽃에서 악취가 난다고?
“라플레시아를 흔히 ‘시체 꽃(Corpse Flower)’이라고 한다. 꽃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서다. 1876년 영국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라플레시아가 전시된 적이 있었다. 그때 꽃이 개화했고, 악취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 
왜 이런 악취를 풍기나.
“여러 설이 분분하나 정설은 있다. 라플레시아는 파리가 꽃가루를 옮기는데, 시체 썩는 냄새가 파리를 꾀어낸다는 설명이다. 파리 사체와 분비물이 꽃 안에 쌓여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는 주장도 있다.”
 죽은 라플레시아.시커멓게 말라 죽은 꼴이 흉측하다. 손민호 기자

죽은 라플레시아.시커멓게 말라 죽은 꼴이 흉측하다. 손민호 기자

라플레시아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이 더 있다. 일본 대중문화가 라플레시아를 유난히 선호한다. ‘유희왕 카드’에서도, ‘포켓 몬스터’에서도, 닌텐도 사의 게임 ‘동물의 숲’에서도 라플레시아가 몬스터 캐릭터로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건담’에서는 로봇 유닛 중 하나로 나온다.

국내에도 라플레시아에 주목한 뮤지션이 있다. 록그룹 ‘국카스텐’이 2010년 발표한 1집 앨범 ‘Guckkasten’에 ‘라플레시아’라는 노래가 있다. ‘끈적한 입을 벌리고/너를 기다릴 때/낯설은 상처는 낡아/버린 날 그리네/비참한 내 입은/다물 줄 모르고/비열한 냄새는/운명을 포장하네.’ 가사가 라플레시아의 특성을 정확히 집어냈다.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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