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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체중이 10kg 줄었다…세상의 종말 보여준 베네수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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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 지난해 8월 카라카스의 한 상점에서 2.4㎏짜리 생닭 한 마리가 1460만 볼리바르(약 2500원)에 거래됐다. 베네수엘라는 화폐개혁을 통해 새 통화 ‘볼리바르 소베라노(최고 볼리바르)’를 도입하는 등 물가를 잡으려 애쓰고 있지만 올해 물가상승률은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 없는 규모인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 지난해 8월 카라카스의 한 상점에서 2.4㎏짜리 생닭 한 마리가 1460만 볼리바르(약 2500원)에 거래됐다. 베네수엘라는 화폐개혁을 통해 새 통화 ‘볼리바르 소베라노(최고 볼리바르)’를 도입하는 등 물가를 잡으려 애쓰고 있지만 올해 물가상승률은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 없는 규모인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이것은 ‘세상의 종말(apocalypse)’이다.”

지난달 정전으로 암흑이 된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전하며 미국 CNN은 이런 제목을 달았습니다. 섭씨 40도의 더위에 전기가 끊기자 황망한 표정으로 거리를 떠도는 시민들, 먹을 것이 없어 약탈을 하다 체포된 젊은이들…. 현재 베네수엘라가 처한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었죠.

[뉴스 따라잡기] 경제지표로 본 베네수엘라의 현재

지난 1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에 맞서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면서 베네수엘라의 혼란은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번 달까지 이어진 대규모 정전으로 민생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죠.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속에서 이 나라 국민들이 신음해 온 것은 수년 전부터입니다.

지난달 11일 정전 중이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사람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수도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정전 중이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사람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수도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몰락은 해체 직후 소비에트 연합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극한의 자연재해나 전쟁·내전 직후에야 나타나는 경제 붕괴가 바로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 국민의 평균 체중은 10kg 이상 줄었고, 전체 인구의 10%는 살기 위해 나라를 떠났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다섯 가지 경제지표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현 경제 상황을 들여다봅니다.

6년 만에 경제규모 3분의 1로..추락하는 GDP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3년 마두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베네수엘라 경제 규모는 ‘3분의 1 토막’이 났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마두로 집권 전인 2012년 3315억 달러에서 지난해 963억 달러까지 떨어졌죠. 카라카스 소재 싱크탱크인 이코아날리티카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GDP가 추가적으로 3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제성장률도 2014년부터 5년 연속 곤두박질치는 중입니다. 2014년 -3.89%에서 2016년엔 -16.46%, 2018년에는 -18%를 기록했죠. 국제금융협회(IIF)는 “잘못된 정책 결정, 부실한 경제 관리, 정치적 혼란”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합니다.

기름에 매달린 경제, 감소하는 원유 생산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베네수엘라 경제가 이렇게 추락한 가장 큰 원인은 ‘기름’입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지닌 이 나라에서 석유 산업은 국가 수출의 96%, 정부 수입의 60%를 차지하는 ‘경제의 모든 것’이죠. 국가 경제는 당연히 국제 유가 변동에 종속돼 있습니다.

2014년 이후 국제유가가 급락한데다 석유 관련 시설에 대한 투자 부족, 정비 불량 등으로 원유 생산 능력도 크게 하락합니다. 마두로의 전임자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취임 전 해인 1998년 하루 300만 배럴을 웃돌던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2018년엔 151만 배럴까지 줄었죠. 거기에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가 겹치면서 수출길은 꽉 막힙니다. 이코아날리티카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84만 배럴로, 지난해의 절반 가까이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불어나는 재정적자, 돈 찍어내는 정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석유 산업의 위축으로 세수가 줄고 이는 국가 재정 악화로 이어집니다. IIF 추정에 따르면 지난 해 베네수엘라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37%에 달합니다. 또 베네수엘라는 187억 달러의 외채를 상환하지 못했고, 80억 달러에 가까운 달러 표시 부채를 올해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석유로 벌어 들인 재원의 상당 부분을 빈민층에 무상 교육·의료와 저가 주택을 공급하는 데 사용했죠. 다행히 당시엔 유가가 안정적이었습니다. 마두로 정부는 곳간이 비어가는데도 전 정권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갔고 그 결과 재정 지출과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마구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한달새 350배 오른 음식값, 초인플레이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통화량이 증가하니 물가가 오릅니다. 한 달에 물가가 50% 이상씩 상승하는 상황을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라 하는데 베네수엘라 물가는 2017년 말부터 매달 50% 이상씩 올랐습니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지난 1월 발표한 2018년 물가상승률은 169만 8488%에 달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인 1000만%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오르니 상품 가격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폐를 길에 뿌리고 종이 접기로 가방을 만들거나 불쏘시개·벽지·휴지로 사용합니다. 마두로 정부는 지난해 8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10만 볼리바르 푸에르테를 1 볼리바르 소베라노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2019년의 시작과 함께 물가는 10주간 무려 465%나 상승했죠. 식재료나 음료 등의 가격은 올해 1월 한 달 사이 350% 이상 치솟았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월급은 생활의 기반이 되지 못합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해 8월 최저임금을 3000% 인상했고 11월에 150%, 올해 1월 300%를 연이어 올렸지만 폭등하는 물가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월 최저임금은 1만 8000 볼리바르 소베라노로, 미화 6.7달러(약 7000원) 수준입니다. 레드와인 한 병이 약 6달러, 사과 1kg은 3.54달러 정도라고 하죠. 학교 교사의 한 달 월급으로도 계란 12개와 치즈 2파운드를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상위 10%가 60% 가져가...커지는 빈부격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인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요. 생계 활동을 포기하고 정부 구호 물품에 의존하거나, 밀수나 도둑질로 돈을 법니다. 수백만명은 해외로 탈출한 가족들이 보내오는 월평균 80달러의 송금액에 의존해 살아가죠. 이미 340만 인구가 나라를 떠났고, 올해 190만 명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라를 떠난 이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액은 해마다 두배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난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차베스 정권 하에서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50%(1999년)에서 27%(2011년)까지 떨어졌었죠. 그러나 지난달 유엔 발표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 인구의 94%는 빈곤 상태에, 60%는 극빈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2014년엔 상위 10% 소득자가 나라 전체 소득의 30% 정도를 가져갔지만, 2017년엔 나라 전체 소득의 60%가 상위 10%의 손으로 들어갔죠. WSJ은 “베네수엘라의 소득 분포는 2014년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세계 최빈국인 아이티보다 더 심각하다”고 전했습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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