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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기립 박수의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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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모차르트 세레나데 후의 기립 박수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 센터에서 그 드문 일이 일어났다. 지휘자는 75세 톤 쿠프만, 악단은 워싱턴의 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NSO)였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는 말그대로 ‘듣기 좋도록’ 만든 상냥한 음악이다. 우아하고 담백한 이 작품이 끝나자 청중은 우르르 일어나더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휘자의 유머 때문이었다. 마지막의 빠른 악장에서 바이올린·더블베이스 연주자는 지휘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악보에 없는 ‘작은 별’ 주제를 섞어넣었다. 지휘자는 또 서로 다른 악기들이 같은 음을 번갈아 반복할 때 어떤 악기에게 다음 지시를 내릴지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런 연기까지 했다.

수준을 조금 높인 장난도 있었다. 17세기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우아한 인도’ 모음곡을 연주할 때 마지막 음의 음정을 일부러 조금씩 떨어뜨리도록 하거나 하이든 교향곡에서 하이든 스타일의 장난을 따라했다. 음악 좀 들어본 사람끼리 공유할 수 있는 ‘내부자 유머’를 구사한 것이다.

순발력있는 재치도 보였다. 자주 연주되지 않았던 라모의 모음곡이 모두 끝났을 때 청중은 박수를 치지 못했다. 끝난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휘자가 다급한 몸짓으로 관악기 연주자 네 명을 일으켜 어서 인사하라는 신호를 하자 청중이 신나게 박수를 쳤다. 이날 연주곡목에는 사실 별다른 드라마가 없었다. 생소한 작곡가인 장-페리 레벨의 ‘혼돈’ 초연으로 시작했고 객석은 한산했다. 하지만 지휘자의 자신만만한 위트가 청중의 만족을 끌어올렸다.

성공한 공연의 종류는 여럿이지만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드는 것만큼 큰 성공은 없다. 수백년동안 셀 수 없이 되풀이 공연된 작품들로 새로운 화제를 만들기가 그만큼 힘들다. 노련한 지휘자는 낡은 재료로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행성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적적 축복으로 사랑 다음에 오는 것이 음악과 유머”라는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표현은 아무래도 정답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