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떨어지는 기초학력]“학교·학원서 외면”…서러운 중하위권 학생들, 학업포기도 빨라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말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경기도교육청 주관 2019학년도 정시모집 대비 대입상담박람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이 입시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지난해 말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경기도교육청 주관 2019학년도 정시모집 대비 대입상담박람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이 입시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 2학년 A군은 요즘 자퇴를 고민 중이다. “더 이상 학교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1학년 때 A군의 내신성적은 6~7등급.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모집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 그는 “수능에 전념해 정시전형으로 역전을 노리려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 다니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계속 다녀봐야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내신 바닥을 깔아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털어놨다.

A군처럼 학교에서 외면받는 중하위권 학생들이 많다. 학교에선 주로 내신 1~2등급의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내신학원 원장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 필요한 각종 교내대회나 내신성적은 모두 일부 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다수의 아이는 들러리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중하위권은 입시나 진학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서울 관악구 일반고에 다니는 B군(2학년)은 “몇 달 전 담임에게 상담을 요청했는데, ‘현재 성적으로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가 전부였다”며 “중위권 성적으로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이나 전망 있는 학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입시업체·학원 등 사교육의 입시 정보도 상위권에만 쏠려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예전에 중하위권 대상 설명회를 개최했다가 ‘학원 이미지 망치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시달렸다”며 “학원에 1~2등급 학생이 많아야 중위권 학생도 따라오기 때문에 입시 설명회나 입시 정보도 상위권 위주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하위권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기회가 줄고 있는 것도 문제다. 중학교에선 자유학기제가 실시되고, 전반적으로 지필고사가 줄어들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학력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성적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고2 자녀를 둔 김모(46·서울 영등포구)씨는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곧잘 하던 아이가 중학교 때 진로 탐색을 한다고 어영부영 보내더니 고1 때 첫 중간고사에서 하위권 성적을 받았다”며 “정규수업만으로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게 어려워 결국 학원에 보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사교육을 통한 선행학습 시기가 유치원 밑으로 내려가면서 아이들 간의 학력 격차가 초등학교 때부터 발생한다”며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학교 수업만으로는 좀처럼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셈하기나 읽기 같이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진아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 이런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게 중요하다”며 “상위권 학생이 중심이 된 수업이 아니라 중하위권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수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에는 사교육의 발달로 유아 단계에서부터 학력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초기에 이를 진단하고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강화해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돕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