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왕 방한 희망”…한·일 관계 개선 계기 되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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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호 34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5월에 즉위하는 새 일왕이 한국민의 환영 속에서 방한하게 될 기회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서울에서 열린 ‘한·일 관계: 새로운 백년을 모색한다’ 토론회에 참석, “(일왕이) 한국민을 접할 때 일·한 관계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게 되리라고 확신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거쳐 오늘날의 유럽연합(EU)가 된 사례를 언급하며, ‘아세안(ASEAN)+한·중·일’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부전(不戰) 공동체’ 창설도 제안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행사에서 “일·한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지금만큼 필요한 때는 없다”고 강조했다. 2015년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의 뜻을 표한 하토야마 전 총리와 와다 교수는 대표적 지한파 인사다. 사상 최악의 한·일 관계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일본 지식인의 고언을 한·일 정부는 경청해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왕 방한과 동아시아 부전(不戰) 공동체 창설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봄직하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27일 “한·일 관계가 좋아야 한·미·일 3자도 혜택을 얻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2년간 한·일 갈등에 침묵해온 미국마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일본 기업인들을 만나 “경제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며 교류를 확대할 뜻을 비쳤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래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걸어왔음에도 갈등 해소를 아예 포기한 듯한 자세를 보여왔다.

한·일은 지난해 무역고가 852억 달러에 달하고, 서로 양국을 찾은 국민이 1000만명이 넘는다. 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온 일본 정부의 노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도, 외교도 일본과 사이가 나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처지다. 일본 역시 북핵을 견제하고 동북아에서 입지를 살리려면 한국과의 친선이 필수다. 이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냉정을 회복하고 국익과 안보에 기초한 현실적 해법 도출에 나서야 한다. 두 정상이 빨리 만나 대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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