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결렬에도…“걱정하지 않는다” 낙관론 캐슬에 갇힌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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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이 위기라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유독 청와대에선 그런 기류가 잘 읽히지 않는다.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로 한반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청와대 내에선 "걱정하지 않는다"는 '낙관론'이 앞서는 분위기다.

청와대 “한·미 공식라인 소통 잘돼” #“문 대통령 외교 실상 모를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9.3.25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9.3.25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5일 한반도 상황과 관련,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며 “국가안보실도 상황을 절대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배경은 북ㆍ미 간에 전략적 이견 때문일 뿐 비핵화 목표가 달라진 것이 없다”며 “한국 역시 북ㆍ미 협상이 이어지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중재자 자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청와대는 지난 21일 NSC 상임위 회의를 열었고 “남북 관계 개선과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축 목표달성이 선순환적으로 상호 견인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북한의 대답은 연락사무소 북측 인력 철수 통보였다.

북한이 22일 상부의 지시라는 입장만 전달한 채 일반적으로 철수하고 우리측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합뉴스

북한이 22일 상부의 지시라는 입장만 전달한 채 일반적으로 철수하고 우리측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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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가 대북 제재의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긴했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을 거듭 얘기하는 것도 미국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 재무부 당국자에게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의 현금 흐름을 투명화하는 등의 장치를 한 뒤 재가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가 무안을 당했다"며 "재무부 당국자가 '그런 인센티브를 받을만한 일을 북한이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단칼에 잘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하루 앞둔 지난해 9월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오른쪽 두번째)이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는 대북특사단과 외교·국방·통일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하루 앞둔 지난해 9월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오른쪽 두번째)이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는 대북특사단과 외교·국방·통일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연합뉴스

 청와대의 한·미동맹 낙관론에 대해서도 다른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안보 상황에 대한 보고 라인이 좁아졌다는데 문 대통령이 여기서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낙관론을 과하게 듣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주변에 있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보라인의 역할이 확대된 상태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서훈 국정원장이 그동안 대미 소통을 주도해왔던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대신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문 대통령이 외교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자신이 확신하는 방향의 정보만 취사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파병까지 하며 한ㆍ미 동맹을 유지했던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라며 “한ㆍ미 동맹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미국이 ‘한국이 가르치려 한다’는 등의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잠시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의사 결정의 주체는 조야나 야당이 아닌 백악관”이라며 “공식 라인의 소통은 어느 때보다 잘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연구소 등이 제기하는 북한의 핵 활동 의혹 등에 대해서도 “대부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과거 정보다. 한ㆍ미 모두 내년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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