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한 아내 vs 40년 동거녀, 누가 유족연금 받아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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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71)

저의 어머니는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다른 어떤 부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로 사셨습니다. 전근이 잦은 아버지의 임지를 같이 돌아다니셨고, 퇴직하신 후에도 아버지와 같이 우유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저희를 키우셨어요.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어머니 외에 다른 아내가 있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기 10년 전에 그분과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셨어요. 그분과 2명의 아들도 두셨습니다.

어머니와 천생연분이었던 아버지에게 사실 다른 아내가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 그분과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셨다가 별거를 했지만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 pixabay]

어머니와 천생연분이었던 아버지에게 사실 다른 아내가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 그분과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셨다가 별거를 했지만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 pixabay]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분과는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임지에 홀로 부임하면서 그분과 별거를 시작하셨고, 그 와중에 어머니를 만나 40년 동안 어머니와 동거하며 정답게 사시다가 몇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유일한 혈육입니다. 아버지는 그분과 이혼하고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려고 무척 노력하였지만, 그분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동거인으로 주민등록하고 지내셨고, 그 점을 어머니께 무척 미안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인이 된 후에 가족들을 초대하여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혼인신고를 못 하더라도 면사포는 씌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셨답니다. 어머니는 비록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같이 동거하면서 차례와 제사를 지냈고, 집안 대소사에 아버지와 같이 참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혼을 거부하는 그분과 전혀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제게는 오빠가 되는 아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어머니의 만류로 식장에만 다녀오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오빠들의 학비를 보조해주셨고, 어머니도 그에 대해 별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는 정말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아버지의 처로서 흠잡을 데 없이 사셨습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병시중을 지극정성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족연금을 그분이 받는다고 합니다. 혼인신고가 되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합니다. 아버지가 군인으로 성실하게 복무하다가 퇴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공이고, 퇴직 후에도 어머니 덕분으로 살림을 유지하였고 무엇보다 지극정성 어머니 병시중을 받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렇다면 유족연금은 우리 어머니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만약 사실상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면,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는 군인연금법상의 '사실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법률혼인 전 혼인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 [사진 photoAC]

만약 사실상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면,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는 군인연금법상의 '사실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법률혼인 전 혼인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 [사진 photoAC]

일찍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6두18584 판결).
“법률혼주의 및 중혼금지 원칙을 대전제로 하는 우리 가족법 체계를 고려하여 보면, 군인연금법 제3조 제1항 제4호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를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배우자에 포함하고 있는 취지는, 사실상 혼인생활을 하여 혼인의 실체는 갖추고 있으면서도 단지 혼인신고가 없기 때문에 법률상 혼인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그 사실상 배우자를 보호하려는 것이지, 법률혼 관계와 경합하고 있는 사실상의 동거관계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사실상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면, 이혼 의사의 합치가 있었는데도 형식상의 절차 미비 등으로 법률혼이 남아 있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는 군인연금법상의 ‘사실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태도에 따르면 어머니는 법률상 보호를 받는 사실혼 배우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대법원은 “비록 중혼적 사실혼 관계일지라도 법률혼인 전 혼인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판시한 바도 있습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64161 판결 참조). 따라서 사례자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인관계는 혼인관계의 실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더라도 아버지의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 상태에 있었는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례자가 드는 사정은 아버지의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어머니가 위와 같은 사정을 주장하면서 검사를 상대로 가정법원에 사실혼 관계가 존재하였다는 확인의 소를 제기해서 승소판결을 받으면 군인연금법상의 유족연금 수급권자인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에 해당하여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인구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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